깜장소 차마고도의 마방이 되다 3 - 리장, 후타오샤(虎跳峡)
2009-12-21
차를 몰아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일단은 티벳 퍼밋(허가증)을 구하던지 아니면 야매(?)로라도 티벳으로 갈 수있을까 확인하고자 하니 마음이 급합니다. 중국에 빽, 한국의 핸드백^^도 총동원 해 봅니다. 그래도 쉽게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티벳 퍼밋에 목숨을 걸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설령 티벳에 못 들어가더라도 윈난성의 차마고도길을 답사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급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따라에서 리장으로 가는 길, 송계(松桂) 라는 곳에 잠시 멈춥니다, 마침 장날이라 점심도 먹을 겸해서 쉬기로 했습니다. 여느 시골 장터가 그렇듯이 정감있는 풍경입니다.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식당으로 들어옵니다 . 몇가지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식당주인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네요.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한국 사람은 난생 처음 본다고 합니다!? 엥 그럴리가.... 이 길은 따리에서 리장으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도로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해 수천 명의 한국인이 이 마을을 지나 리장을 갔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인을 처음 본다니요? 이 앞으로 지나간 수천, 수만명의 한국인 중 이 식당에 들어온 넘이 한명도 없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갑자기 스테파노 님이 돈을 꺼내십니다. '아이고 회비도 있은데 뭐 점심부터 쏘실려구^^' 어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식당주인도 지갑을 꺼냅니다. 알고보니 돈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국인을 처음 보자마자 가장 궁금한 것이 한국돈 이랍니다. 결국 적당한 비율도 한국 돈을 바꿔주니 주인장 표정이 환해집니다. 어떻게 처음 만난 한국 사람한테 가장 궁금하 것이 그 나라 돈일까요. 하여간 중국넘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난 외국 사람에게 가장 궁금한 것이 무엇일까요? 한마디씩 해보시지요^^
늘 먹는 볶음밥, 지단챠오판과 당나귀고기입니다. 중국인들은 당나귀 고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 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용고기 있을 턱이 없으니 지상에서 제일 맛난 건 당나귀 고기라는 말이겠지요. 실제 맛을 어떨까요. 첫맛은 ......
짭니다. 하두 소금을 많이 쳐서 맛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때 제대로 맛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일행 한분이 술 한병을 사옵니다. 맛은 별로인데 기사인 곽라오스가 술병을 살피더니 무지허니 좋은 술이랍니다. 어디에요? 봄春 를 보면 아시겠지요. 갑자기 너두 나도 한잔 씩^^ 그렇게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좋은 술 먹고 좀 효과가 있었을까요 결론은 '미동두 없습니다' 미동 얘기를 하다보니 몇 년전의 일이 생각나에요. 몇년 전 음악티와 깜장소 등 몇 명이 상해를 갔었습니다. 같이 간 21살의 총각 윤X군이 맛사지를 받고 왔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역합니다. 긍금한 음악티 물어봅니다.
음악티 : 야 윤X 아! 무슨일 있니?
윤X : 맛사지 받다가 당황해서 혼났어요
음악티 : 아니 왜 무슨 일 있었는데?
윤X : 맛사지 아가씨가 여기 저기 맛사지를 하다가 허벅지를 주무르는데 갑자기 .....
음악티 : 그래서 ?
윤X : 애국가 열심히 불렀어요!
음악티 : 야 임마! 애국가는 그때 부르는 게 아니여^^
호기심이 발동한 음악티와 깜장소 그리고 명지대 있는 김모 교수 해서 세명이 은밀하게 그 맛사지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맛사지를 받고 내린 결론 "미동두 없다"
드디어 리장에 도착했습니다. 리장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리장고성이 있는 곳이지요.
리장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볼까요
리장에 주로 거주하는 나시족은 8세기, 현재의 칭하이성 부근에서 남하해 왔다고 전해집니다. 남하 당시 마사조로 불리는 작은 나라를 건국했지만, 당나라에 의해 따리의 몽사조 난조오궈에 편입됩니다. 그 후 인근의 티벳 윈난의 소수민족의 영향을 받아 리장에 독자적인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현재의 구시가이죠. 리장 구시가의 건축물은 대부분이 목조이고. 불교나 도교의 불상도 있고, 소수민족에 의해서 만들어진 리장 벽화가 남아있다고 합니다(위키백과 인용)
1996년 대지진이 리장을 덮칩니다. 고성도 일부 파괴되었지만 엄청난 피해를 당한 신시가지의 현대식 건물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진을 계기로 리장고성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제되면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리장이 매우 아름다운 고성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제가 처음 다녀간 2005년에 비해서도 몇배 쯤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들리는 애기에 의하면 하루에 3000명이 넘는 중국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고성의 바닥보다는 사람 머리가 더 많이 보이는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리장에 리장고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리장에는 저희 일행의 묵게되는 수허고성(束河古城), 나시족의 전통벽화 양식을 볼 수 있는 바이샤(白沙/백사), 자연환경으로는 북반구 최남단에 위치한 만년설산인 위롱쉐산(玉龍雪山/옥룡설산),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다는 협곡 '후타오샤(虎跳峽/호도협)' 등등 이 있습니다.
리장 신시가지에 마오쪄뚱 동상도 보이는 군요. 마오주석 동상은 어느 도시에나 있습니다만 마오주석의 뻗고 있는 다섯 손가락에 의미가 있다고 하는군요. 그럼 마오 주석의 다섯손가락은 무슨 의미일가요? 객관식으로 가겠습니다.
마오주석의 다섯 손가락의 의미는?
1. 중국의 오성홍기, 즉 다섯별을 가리킨다
2. 중국의 역사는 오천년이다
3. 리장의 택시 기본요금은 5원이다.
4.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 보다는 5가 더 좋다
정답을 가장 먼저 맞추시는 분께 발렌타인 17년산 쏩니다. 힌트는 넌센스 퀴즈입니다. (음악티야 준비해라)
저희 일행이 묶게되는 수허고성입니다. 리장고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사람도 적고 고느넉해서 정말 좋습니다. 혹시 앞으로 리장에 가시는 분들이 계시면 리장고성보다는 수허고성에서 숙박하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한가지 단점은 있습니다. 수허고성의 입장료인데 물경 70원인가를 받습니다. 입장료 다 내고 들어갔냐구요? 저희의 가이드 경원이가 누구입니까? 한 푼도 안 내고 들어갔습니다. 혹시 수허고성 가실 일 있으면 깜장소에게 문의하시면 되겠습니다^^
수허고성의 숙소입니다. 이름이 멋지지 않습니까 '오래된 친구 호텔' 이라. 실재로 오래된 목조 건물을 깔끔하게 손질해서 분위기 좋습니다.
마당도 넓어 좋습니다
프랭카드 걸어놓고 자세도 한번 잡아보고요. 맨 왼쪽이 우리의 기사 곽라오스 되겠습니다.
밤에도 분위기 좋습니다. 음악티가 맥주 한병들고 홀로 앉아 분위기를 즐기고 있군요
담장에 달리아도 예쁘게 피었습니다. 달리아를 보니 깜장소 고 3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 군요.
고3 때 집근처 서울여고 앞 독서실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친한 후배 녀석도 있었구요.서울여고생인 그 녀석 누나도 같은 독서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저희 집 마당에 달리아가 아주 예쁘게 피었습니다. 그냥 시들어 가는 것이 안 돼 보여 몇 송이를 꺽어 독서실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남자녀석 책상앞에 꽃을 놓았는데, 분위기가 영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꽃을 후배 녀석 주면서 누나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습니다. '네' 하고 신나게 뛰어간 후배 녀석은 좀 있다 난처한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누나는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다' 며 단호히 거절하더라는 것입니다. 엥! 일이 그렇게 되나...... --;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저는 후배녀석 누나의 얼굴도 못 보았습니다^^ 아니 얼굴도 못 본 여학생한테 차이다니..... 이때부터 깜장소의 연애전선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나 봅니다ㅋㅋ
수허고성입니다. 사람도 많지 않고 아담하며 분위기도 좋습니다. 아주 정감있는 마을입니다.
수허고성에도 마방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가만히 만저보니 깔려있는 박돌에 말발굽이 부딪치며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무명당이란 이름의 인두화가의 집입니다.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림도 아주 좋고 포스^^도 있습니다. 경원이 덕분에 많은 사람 만나며 호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친구가 그린 그림 한점 감상해 보시지요. 재주가 부족해 사진이 별로입니다만 그림은 좋아보이지요
집 나간 가출 어른들에서, 이제 조금 원정대의 포스가 느껴지기 시작하는군요 ㅎㅎ
야경도 훌룡합니다.
이렇게 수허고성의 밤은 깊어갑니다.
이제 마방이 리장을 떠나 후타오샤(호도협)을 가는 지름길 문하이(文海)를 가 볼 차례입니다. 위 지도에서 리장위에 녹색 줄이 보이시지요. 문하이는 옥룡설산 중턱에 있는 작은 호수입니다. 얼하이, 문하이... 왜 호수에 바다 海자를 붙이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바다를 못 본, 그리고 볼 가능성도 없는 넘들이 바다가 이러지 않을가하는 바램으로 붙여좋은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허고성을 나서는 길에 갑자기 탄성이 터집니다. 옥룡설산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것도 한 여름에... 경원이의 이야기에 의하면 한 여름에 옥룡설산에 구름이 걷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을 통 틀어서 봉우리 전체가 보이는 날도 몇 일 안 된다고 합니다. 운이 좋습니다.
저희만 흥분한게 아닙니다. 동네주민 경원이^^도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옥룡설산이 다 보인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 여름이라지만 눈에 보이는 만년설이.......... 애게. 2005년에도 이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참상을 직접 확인하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합니다.
이제 마방이 밟아간 문하이로 가는 길, 어떻게 갈까요? 사발이 오토바입니다. 결코 가까운 거리도 아닌 곳을
한나절 덜덜 거리며 갑니다.
난생처음 타보는 사발이 오토바이에 목발까지 잡아 맨 음악티 좋아 어쩔 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도 안 타본 넘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니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차 몰고 유럽을 몇 번 가 보니, 좀 더 색다른 시도가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자전거로 유럽을 달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합니다.
깜장소 : 야 나는 자전거 타고, 너는 오토바이타고 함 돌자!
음악티 : 좋다 !
깜장소 : 그래 내년에 가는 거다
음악티 : ..........--;
깜장소 : 뭔데
음악티 : 그게.......... 나 자전거 안 타봤다
깜장소 : 야 임마 누가 너보고 자전거 타레, 오토바이 타랬지 !
깜장소 : 엥 이런 ............. 미안하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사발이 타고 가면 되는데^^
문하이가 보이는군요. 조그만 호수에 넓은 습지가 있습니다. 습지에는 많은 말과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문하이 옆 마을에 사는 주민들입니다. 여기도 역시 일은 여자들이^^ 남자, 젊은 녀석들은 호수가에서 당구만 치고 있습니다.
자 이제 호숫가 습지를 사발이 오토바이로 내 달립니다. 아마 우라니라에서는 습지 훼손으로 벌서 감옥에 갔을 것 같습니다. 전부 다 신났습니다만 특히 신이난 두사람 음악티,
그리고 스테파노님입니다. 이렇게 문하이까지 차마고도 답시를 마치고 복귀를 합니다.
이제 후탸오샤입니다. 후타오샤는 이때 트레킹을 한 것은 아니고 나중에 내려오면서 들리게 됩니다만 리장과 함께 소개하는 것이 좋을듯 해서 다뤄 봅니다. 위 지도는 후타오샤 트레킹 개념도입니다. 윈난성 리장에서 꼭 해야만 할 것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저는 자신있게 후타오샤 트레킹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 길도 마방이 지나 다니던 차마고도의 일부입니다. 하루 8시간 정도면 트레킹이 가능한데 마치 알프스나 히말라야트레킹을 하는듯 합니다.
수직거리 1000m가 넘는 절벽을 옆에 두고 좌우에 고도 6000m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사이를 걸어가게 됩니다. 간단히 후타오샤 소개해 볼까요
후타오샤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은 대협곡으로 전체길이 17km이고 강과 산의 표고가 가장 많이 차이나는 곳은 3000m에 이릅니다. 양쯔강의 상류인 진사강이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사이로 들어오며 강폭이 좁은 곳은 30m 되지 않아 호랑이가 한 걸음에 뛰어넘을 만큼 좁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후타오샤(虎跳峡호도협)입니다.
그 넓었던 강줄기가 불과 30m로 좁아지니 그 물살의 빠름과 급류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길 또한 험난한 구간이 많아 매년 사망자가 나오는 형국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산에서도 매년 사고가 나지 않습니까^^ 본인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한다면 트레킹 코스로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곳이 후타오샤라 하겠습니다.
후타오샤 하류를 트레킹하던 스테파노님이 어린 중국친구와 같이 있군요,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이 어린 친구가 장사를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이 지역을 벗어나 본적도 없는 친구지만 준비해 간 학용품을 챙겨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손을 잡아줍니다.
올라가면서 들리고, 내려오면서 트레킹을 한 곳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다소 글이 길어졌습니다. 지루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