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서양문명의 시원을 찾아서 5 - 파묵칼레
2019-10-17
파묵칼레로 향한다. 파묵칼레는 터키에서 카파도키아와 더불어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들판 언덕위에 하얀 성채 같은 석회암이 보는 이에게 신비감을 자아낸다. 터키어로 '파묵'은 목화 '칼레' 는 성이다. 즉 '목화의 성' 이라는 말이다. 목화를 생산하는 지역도 아니지만 목화처럼 보이는 하얀 석회석이 성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흘러내려 만들어 낸 하얀색의 석회암 지형은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석회암은 다 있고 그 석회암이 흘러내려 만든 다양한 지형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파묵칼레처럼 외부로 노출된 언덕에 성처럼 보이는 규모로 만들어진 석회암은 흔치 않다. 보는 이의 신비감을 자아내게 하고 온천수까지 흘러내리니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다.
칼슘이 풍부한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석회암을 녹여 웅덩이를 만들었고, 이런 웅덩이들이 다랭이 논처럼 계속 이어진다. 섭씨35도 정도의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일찍부터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로마제국의 황제와 귀족들도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겼고 클레오파트라도 여기서 피부를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실제로 클레오파트라가 왔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어느 지역을 자랑하고 싶으면 유명한 사람을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피부에 좋다고 얘기되는 온천이니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적절한 사람은 없으리라^^
목화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얀 석회암의 성채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파묵칼레지만 사실 '신전'(神田) 이라고 불리우는 석회암 웅덩이만 보았을 때 규모나 물의 빛깔은 그렇게 아름다운 축에 끼지 못한다. 특히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대규모 온천 개발이 진행되고 인근에 호텔도 많이 들어섰다. 그리고 온천수 개발에 계속되면서 온천수의 양도 많이 줄고 침전물이 생겨 색도 많이 바랬다. 물론 시설좋고 져렴한 숙소들이 많아져 관광객들의 호주머니 사정에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한다. 문제는 그럴 수록 관광객은 많아져서 온천수는 적어지고 오염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의 양면성이다. 물론 필자도 수영장은 물론 개인 온천 목욕탕까지 딸린 호텔을 저렴한 얻었다고 자랑하면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
파묵칼레에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또 하나의 시설이 있다. 바로 고대부터 만들어져 이용된 이른바 '엔틱 풀' 이다. 6세기에 만들어진 온천욕장이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기둥과 여러 석재들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화려한 대리석 기둥들이 물속에 잠겨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엔틱 풀' 이라고 붙였다. 방송에서 파묵칼레를 소개할 때 반드시 소개되는 곳으로 여기서 수영해 보고자 파묵칼레를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 입장료도 따로 받고 있으나 관광객들은 개의치 않고 기꺼이 지갑을 열고 엔틱수영장에 몸을 담근다^^
사실 이곳의 진수는 '목화의 성' 이 아니다. 여기의 주인공은 그 뒷 편에 있는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 이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번성했다. 온천이 있는 휴양도시이면서도 비옥한 토지가 있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유난히 신전이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또 BC190년 경에 페르가몬 왕국의 텔레포스 왕이 아내 히에라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도시에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이든 히에라폴리스에는 신전이 무척 많다. 이곳에 신전이 많은 이유는 주민들이 온천에서 나오는 가스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앗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대국가는 국가의 대소사를 행할 때 신의 뜻을 알고자 했다. 방법은 다양했다. 중국에서는 거북이 등껍질을 불에 구워 그 갈라진 모양으로 점을 쳤고, 그리스에서는 화산지대 가스가 나오는 곳에 신탁을 만들고, 사제는 이 가스를 들이 마시고 신의 말씀을 전했다. 지금 성분을 분석하면 메탄, 에탄올, 프로판, 부탄, 탄화수소 등의 성분의 검출되는데, 이들은 들이 마시면 뇌에 있는 산소를 빼앗아 마취, 질식 등을 일으키며 신경계를 마비시킨다. 특히 에탄올은 마취에 널리 쓰였던 성분이다. 즉 가스를 들이 마신 사제 혹은 무녀가 마취성분에 취해 신에 말슴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대인들에게 신과의 대화, 신의 말씀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국가의 대소사 특히 전쟁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신의 말씀은 국가의 흥망을 가르는 중요한 사건이다. 가스에 취한 무녀는 신과의 합일, 즉 '접신' 을 통해 신의 말씀을 전한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이 상태를 Twillight state 라고 하는데, Twilight 이라는 것은 밤과 낮의 경계상태, 즉 밤낮을 구별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한다. '트와일라잇 스테이트' 는 번역을 하자면 '몽롱상태' 인데, 즉 밤인지 낮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태, 인간인지 신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신의 말슴을 전했다는 것이다. 고대에서 이런 식의 신과 합일은 아주 일반적인 것이었다. 화산 가스나 약물, 격렬한 춤을 통해 접신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신체에 심각한 고통을 가하여 신과 뜻을 알고자 노력하였다. 그리스에서는 이런 신탁이 전역에 걸쳐 있었으며 텔포이 신탁이 가장 용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전쟁같은 국가의 중대사를 단지 무녀의 몇 마디 말로 시작하고 끝낼 수 있을까?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정치가 개입되었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유리한 방향으로 무녀들을 이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 무녀들은 금전이나 권력같은 다른 수단을 얻는 대가로 정치인들과 협력하였을 것이다. 뭐 방식의 차이가 좀 있을 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는 '개와 늑대의 시간' 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이 있다. 즉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동물이 나를 반겨주는 개인지, 나를 헤치려는 늑대인지 구별할 수 없는 시간이라 뜻으로 트와일라잇과 같은 뜻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때를 표현하는 '어스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데 단순히 시간을 나타낼 뿐 철학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적절한 단어도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트와일라잇' 이라는 늑대인간을 다룬 소설과 영화가 나오고 '개와 늑대의 시간' 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의 철학적 함의를 알든 모르던 간에 말 자체가 참 멋지지 않은가? '개와 늑대의 시간' 이 단어를 쓰며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며 빙긋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3세기에 지어진 원형극장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들 중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편이다. 12,000명을 수용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지금도 가끔 이용되고 있다. 한때 인구가 80,000명에 달했던 히에라폴리스는 계속된 지진으로 파괴와 건설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서기 60년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완전히 붕괴된다. 이후 도시는 버려지고 현재의 모습 그대로 폐허가 되었다. 즉 지금의 도시는 버려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도시가 버려졌기 때문에 지금의 유적들이 보전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가 새로 세워졌다면 당연히 기존의 도시 위에 새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옛 흔적은 '땅 아래로 묻힐 수밖에 없다. 복구나 건설이 아니라 무관심과 방치가 도시 유적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흥준 선생도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에서 폐사지(절터)는 가장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얘기했나 모르겠다
도시의 북쪽 끝으로 가면 도미티아누스의 개선문을 만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사람이 사는 도시의 경계이고 이문을 나서면 공동묘지인 죽은 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가 나타난다. 2km 에 걸쳐 수 많은 무덤과 석관들이 있으며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대략 1,200 여개의 석관 묘지가 있다. 로마는 12표법에 의해 도시 내에서 화장과 매장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모든 주검은 도시를 나와 죽은자들의 도시로 와야 한다. 네크로폴리스 입구에는 이런 말이 써 있다.'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인간의 존재는 유한하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너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마을 주민 뿐 아니라 이곳에 치료 휴양 차 왔다가 죽은 귀족들의 무덤도 많이 있다. 무덤으로 쓰인 석관은 그 신분과 귀천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돈 많은 귀족들은 주로 화장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매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장례는 인생사에 중요한 일이다. 우리도 장례를 사례(四禮)인 관혼상제(冠婚喪祭) 중에 하나로 매우 중요시 하였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장례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죽은 자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표하는 의식이기도 하지만 죽은 자는 산자를 위해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주검은 산자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 죽음의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그렇지만 전염병의 경우라면 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인간들은 각자 자신의 환경과 세계관에 맞는 주검의 처리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가장 흔한 주검 처리 방식은 매장이다. 땅에 주검을 묻으면 빠르게 처리가 된다. 우리의 경우도 가장 흔한 처리 방식이었다. 그런데 매장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은 주검이 드러날 수 있고 야생동물이 주검을 훼손할 수 있다. 이 경우 화장을 한다. 열대 우림이 우거져 목재를 구하기도 수월하다. 땅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극지방의 경우 수장(水葬)을 선택한다. 눈 속에 주검을 묻을 수는 없다. 에스키모가 대표적이다. 티벳처럼 건조한 지역은 매장을 해도 주검이 잘 썩지 않는다. 나무도 귀해 화장을 하기도 여의치 않다. 이 경우 주검을 잘게 나누어 독수리나 새의 먹이로 준다. 천장(天葬) 혹은 조장(鳥葬) 이라고 하는데, 티벳 사람들은 독수리가 깨끗하게 먹어치울 수록 극락에 빨리 간다고 믿는다. 주검을 외딴지역에 그대로 놓아두어 뼈만 남게 한 후 수습해서 묻는 방식도 있다. 풍장(風葬)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일부 섬지방에도 존재하는 방식이다. 이런 장례방식도 시대에 맞게 변화한다. 매장을 주로 했던 우리나라도 늘어나는 묘지 면적에 골머리를 썩혔다. 매장이 주로 이루어 지던 80년대, 한 해 여의도 면적의 30배가 묘지로 바꼈다. 그대로 방치 했다가는 금수강산이 묘지강산으로 바뀔 지경이었다. 결국 화장을 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화장율이 90%를 넘는다.
이날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갔다. 머리 벗어지는 줄 알았다^^
이제 파묵칼레를 떠나 카파도키아로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