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016 숭문산악부 동계훈련 - 중국 설두산,신선거

깜장소 2024. 1. 7. 10:26

2016-01-26 

2016년 1월 4일부터 5일간 숭문산악부 동계훈련을 다녀왔다. 이번 동계훈련 장소는 중국 설두산, 신선거로 정했다. 요 몇년 중국, 일본으로 원정을 가 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학교에서 결재가 나지 않았다. 사실 말이 좋아 원정이지 여러가지 여건상 실제로 갈 수 있는 것은 트레킹 정도 되겠다.     

처음 가 보는 해외 산행에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학생 14명 지도교사 2명해서 전체 16명 되겠다. 예년과 다른 점은 숭문산악부 학생들 이외에 4명의 신원중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숭문산악부 동 하계 정기훈련에 외부 손님들이 참여한 적이 많이 있었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동계훈련 역시 준비할 때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허가 결정이 나면서 학교당국도 못 가게 할 명분이 사라졌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학생들과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면 누가 청소년 야외활동 지도교사를 할까 의문이 든다. 아무리 가산점을 부여 하면서 권장한다고 하지만 모든 학교에서 청소년활동 지도 교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관리자들은 청소년 야외활동을 꺼리고 있고,  방대하게 준비해야 하는 안전관련 서류들은 담당 교사들을 질리게 만든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수련회 이외에 모든 청소년 야외활동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당국의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도착,  임시정부 청사 유적으로 향한다.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높아진 독립의 열망을 모아 수립된다. 그러나 일본의 모진 탄압을 피해서 이후 중경, 충칭으로 옮겨가게 된다. 사실 임시정부 유적지는 사료  하나 없이 방치되던 곳이었다. 건물도 낡고 남은 유적도 없이 방치되다가 1990년대 이후 이곳 상하이에 다시 복원되었다.  2층 집무실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40대 김구선생 밀랍인형이 낯설어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구선생은 대부분 70대 이후의  사진 뿐이니 1920년대 40대의 김구선생이 낯설은 것도 당연할 것이다.

전시되어 있는 사진, 유물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이 유적은 도심 재 개발로 헐릴 처지가 된 것을 관심을 가진 몇몇 한국인들의 노력으로 복원된 곳이다..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대 여섯 갈래로 준비되던 임시정부 준비가 하나로 모아지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임시정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대한민국임시정부(1919~45)의 수립은 국내에서 3·1운동의 민주적 정부형성의 의지와 해외 각지에서 성숙된 민주공화적 자립의욕의 결과에 의해 복합된 2,000만 민중의 욕구분출로 가능해졌다. 지역적인 이점을 고려하여 상하이에 자리를 잡은 임시정부는 신규식(申圭植)의 터잡기와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의 다양한 민주공화적 전력을 승화·연결시켜 3권 분립의 민주공화정부를 탄생시켰다. 먼저 이동녕의 주도로  임시 의정원을 구성하고 여기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제정·공포한 뒤 국무총리와 6부의 행정부, 국무원을 구성했다. 이어 1919년 4월 13일 의정원과 사법부의 3권분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정부를 출범시켰다'

-  브리테니카백과사전 -  

사실 임시정부가 있는 곳은 상하이 중심가에 해당한다. 임시정부 유적 때문에 개발을 할 수 없어 낙후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중국인들의 불만도 있다. 그러나 개발하기는 쉬워도 보존하기 어려운 것이 도심의 유적들이다. 어차피 건물의 소유권이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지역이라도 보존되어 도심의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 낸다면 나중에라도 고마워할 지 모를 일이다.

 임시정부 청사를 떠나 상하이 관광의 기본, 예원으로 향한다. 예원은 역사 도시가 아닌 상해에서 중국전통의 건축과 정원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예원은 명나라 때인 1559년 반윤단이라는 인물이 아버지를 위해 공사를 시작, 20여년에 걸쳐 완공된 것으로 중국 정원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여기 저기 다니며 느끼는 중국정원의 한가지 특징은 괴석(怪石)이 많다는 것이다. 북경의 이화원부터 소주 졸정원, 여기 예원까지 모두 괴석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석의 생김새와 크기가 바로 정원의 품격과 만든 이의 정성을 나타낸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화원의 한 괴석에는 그 돌의 소유자가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 돌로 정원 치장하느라 집안이 몰락한 전설까지 따라 다닌다. 하여간 중국인들의 대단한 돌 사랑이다^^ 

예원은 상가의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야경을 보자면 좀 늦게 입장해 마감시간에 맞춰 나오시는 것이 좋은데.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 야경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듯하다.

중국에 처음 간 한국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음식과 화장실이다. 중국 음식은 기본적으로 향신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한국인들 많이 힘들어 한다. 자주 접하다 보면 익숙해 지는데 처음에는 아주 힘들다. 학생들도 거의 먹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중국 와서 한식만 먹을 수도 없는 일. 자주 접하고 먹어 보는 수밖에 없는데, 처음에 전혀 못먹던 소선생도 이제는 아주 잘 먹는다. 차즘 나아지겠지 했지만 돌아오는 날까지 거의 못먹는 녀석도 있었다.  어쩌겠니, 고생을 많이 해야 기억에 남는 단다ㅎㅎ  중국의 화장실 또한 악명 높다. 2008년 베이찡 올림픽 이후에 좀 나아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우리 기준으로 보면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대도시는 좀 나은데 시골로 가면 재래식 화장실의 기억이 있는 기성세대도 많이 힘들어 한다ㅋㅋ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화장실 청결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조정래 선생이 '정글만리'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자신들 안방보다 개끗한 화장실이라고 얘기했을까. 

상해를 떠나 4시간을 달려 저장성 닝보의 숙소에 도착한다. 5성급 호텔인데 시설도 좋고 아주 깨끗하다. 중국에 오면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호텔이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시설이 좋아 만족도가 높다. 5성급 호텔을 중국 아니면 언제 가볼까 싶다. 한국의 5성급 호텔은 객실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 

저녁을 먹고 호텔 로비로 나와 본다. 동료 소선생과 맥주나 한잔할까 싶었는데 안주가 마땅치 않다. 고민 끝에 밖에 나가보기로 한다. 여기 저기 둘러보니 마땅한 식당은 없고 길거리 포장마차가 보인다. 이것 저것 찾아보니 치킨이 눈에 띈다. 요즘 중국에서도 유행하는 치맥이면 훌륭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처음에 닭인가 했더니 크기가 좀 작다. 물어 보니 비둘기란다. 어렸을 때 산비둘기를 잡아 먹었던 기억은 있는데 비둘기 튀김은 처음본다. 조정래선생님 왈 중국인들이 한국 와서 궁금해하는 두번째가 그 맛난 비둘기를 안 먹는다고 하는 것인데.... 실제로 먹어보니 그 맛은 상상 이상이다. 치킨보다 휠씬 더 쫄깃하고 식감이 좋다. 쫄깃하며 단맛도 있고 확실히 치킨보다는 한수 위다. 비둘기 튀김, 중국가시면 꼭 한번 드시기를 추천한다.         

다음날 닝보를 출발 설두산으로 향한다 .설두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설두산은 저장성 봉화시에 위치한다. 설두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사명산 자락의 정상에서 흘러 내리는 물의 색깔이 백색이어서 설두산이라고 불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산 정상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설두사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두번째 설이 확실하다고 단언한다. 산 위쪽부터 15개의 폭포가 계곡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설두산 산행은 버스를 타고 정상으로 가서 상은담 폭포부터 계곡을 따라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겨울인데도 아열대 기후라 비가 온다. 기온은 온화하고 춥지 않다.   

이곳은 안으로 들어오기 까지 계곡이나 폭포가 존재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산도 그리 높지 않고 물도 보이지 않는다. 상은담이라는 이름이 그래서 생겼다고 한다. 산도 높지 않은 계곡에 이렇게 풍부한 수량의 폭포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니 놀라울 따름이다. 비가 좀 오락가락하는데 그래도 안개는 거의 없고 산행하기 그리 나쁜 날씨는 아니다. 겨울에 눈은 고사하고 푸릇푸릇한 나무 사이들 산행하자니 봄이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체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어본다. 노란 셔츠가 파란 대나무 잎들과 잘 어울린다. 이 지면을 통해 단체 셔츠를 협찬해 주신 미스테리 웰 양대길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계곡을 내려와서 산악모노레일을 타고 도착한 곳은 설두산 풍경구의 핵심인 천장암폭포이다. 높이가 156m로 겨울임에도 상당한 수량을 자랑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겨울에 빙벽을 등반하는 산악인들로 붐볐을 것 같은데 이곳은 아열대 지역인 관계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사계절이 뚜렸하다는 것은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계절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겨울에 한국의 스키장에 와서 즐거워 하는 동남아 사람들을 보면 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겨울은 많이 춥고 여름은 엄청 더운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너무 춥고 덥다보니 온화한 봄 날씨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얘기했더니 남들이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이라고 얘기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추워 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추위나 더위를 타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추위 더위가 싫어 지고, 나중에는 봄만 있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곳이 있냐고 질문한다. 있다^^ 위도는 낮아 열대 지방에 가깝지만 고도가 높아 1년 내내 봄만 있는 곳이 있다. 중국의 윈난성이나 태국의 치앙마이가 그렇다. 나중에 그 쪽 가서 살거라고 입버릇처럼 떠들고 다닌다. 실제로 어찌될 지는 모르지만...      

신원중학교 네 녀석도 잘 따라 다닌다. 한 녀석은 고등학교 동창의 아들 규성이고 나머니는 규성이 친구들이다. 처음에는 좀 긴장하더니 그런대로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숭문산악부 분위기에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다.  숭문산악부는 집합시간 이외 다른 것은 간섭하지 않는다. 숙소에서 잠을 자든 밤을 새든 자신이 알아서 하면 된다. 다만 아침 집합시간만 지키면 된다. 대신 지각을 하면 지각비를 내야한다. 지각비는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국내의 경우 1분 지각에 천원, 공항 지각은 1달러, 중국에서는 10위안 되겠다. 지각비는 나중에 전체 회식비로 사용하는데 본전 뽑을 만큼 먹기 때문에 지각비 지출에 큰 불만은 없다. 학교 수련회나 수학여행가서 일상적 시간 통제에 익숙한 녀석들이라 처음에는 무척 낮설어 한다.     

설두사로 올라간다. 설두사는 진(晉)나라 때 창건해 당송 을거치며 번성을 누리다가 1960년 문화혁명 때 파괴된다. 지금의 설두사는 1980년 이후 불사하여 다시 중창한 절이다. 그리고 1998년 미륵불 불사를 시작하여 청동 1200톤, 900억원의 돈을 들여 높이 38m의 미륵좌불(포대화상)을 조성한다. 포대화상은 당말에 실존한 인물로 추정되는데 늘 포대를 걸치고 걸식을 하며 음식을 걸망에 담아 두엇다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나눠주었다고 전한다. 미륵좌불 뿐 아니라 절 전체가 새로 불사를 깨끗하고 규모 또한 엄청나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 조성한 절에 와서 경건하고 숙연한 느낌이 들기보다 화려함과 반대로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절집은 좀 누추하고 후락해야 한다는 선입견일 수 있지만, 이렇게 화려한 불상과 절집들이 과연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도량으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절집 앞 상가까지 깨끗한 음식점들로 조성한 수덕사보다는 절절한 세월의 의 때가 묻어있고 단청도 벗어져 있는 부석사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싶다. 포대화상이 살아서 900억원짜리 자신의 불상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설두산 탐방을 마치고 신선거로 향한다. 신선거 산장호텔 입구에서 보이는 봉우리들이 석회암 특유의 지형을 만들어 내며 일행을 반긴다. 신선거는 북송의 진종황제가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용안이라는 기존의 지명 대신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는 '신선거'라는 지명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실 어디나 신선이라는 지명이 붙은 곳은 매우 많다. 우리나라에도 비선대나 신선대 신선봉 등등의 지명이 많다. 신선 뿐 아니라 선녀와 관련된 지명도 많이 보이는데 재미있는 것은 봉우리나 바위들은 신선 연관된 지명이 많고 계곡이나 물에 관해서는 선녀와 연관된 지명이 많다는 것이다. 12선녀탕이나 옥녀탕 상팔담 등 물은 전부 선녀와 연관이 된다. 아마도 선녀는 목욕과 연관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 같은데. 아마 풍광 좋은 계곡이나 소에서 목욕하지 않으면 선녀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중국도 이런 점은 우리나라와 똑같다.  

빨간색,파란색 옷은 매드아웃도어 김병철 사장님께서 협찬해 주신 것이다. 늘 숭문산악부를 도와주시는 김병철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여기저기 도움만 받고 산행하다보니 소선생과 민폐산행이 숭문산악부 주 특기라고 이야기하며 웃어 본다.

신선거 등반을 시작한다. 게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과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중국 산 대부분이 그렇듯이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그런데 우리는 명색이 산악부! 걸어 올라가기로 한다. 2시 정도 걸린다고 하니 걸어 올라가기 그리 먼거리는 아니다. 어! 그런데 가이드가 자기는 무릅이 아파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도 있나... 학생들 데리고 산에 가는 관계로 일부러 이쪽 등산전문가라고 추천받은 가이드를 고용했는데 혼자 케이블카를 타겠다니... 중국을 다니면서 가이드 문제로 속 끊인적이 한 두번도 아니지만 이번은 좀 심한 것 같다. 나중에는 학생들이니 쇼핑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미리 얘기했지만 결국 어설픈 쇼핑상점으로 데리고 가는 바람에 얼굴을 붉히기도 하였다. 어차피 한번 볼 것이고 자신은 한국 사람도 아니니 별로 신경쓸 것 없다고 생각들 하는 것 같다. 결국 나중에 가이드를 추천한 후배에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렇게 우여골절 끝에 산 중턱에 도착한다. 기괴하고 신기한 석회암봉우리들이 우리를 반긴다. 이런 지형 대부분은 물에 약한 석회암에 녹아 내리면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화강암산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지형들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화강암산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황산인데 곧잘 금강산에 비교되곤 한다. 2007년 여름 황산과 금강산을 며칠 상관에 둘 다 가봤는데 내 눈에는 금강산이 좋아 보였다. 물론 사람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금강산을 갔다 온 것도 벌 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남북관계가 좀 진전되어 다시 금강산에 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이곳은 지형적 영향으로 구름이 많이 낀다. 그럼에도 구름사이로 보이는 풍광들이 신선거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묘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잠시 풍광을 감상해 보자

구름이 많이 끼고 흐렸던 날씨가 갑자기 좋아졌나? 그럴리가^^ 이 사진은 Mr.bin 님의 블러그에서 무단으로 퍼왔다. 미안합니다...  잔도가 위태위태하게 절벽에 걸려 있다. 잔도는 절벽에 구멍을 뚫고 나무를 꽂은 다음 그 위로 다리를 놓는 길이다. 이런 방식의 길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 진나라가 망하고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유방은 항우의 40만 대군의 밀려 파촉, 그러니까 지금의 사천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사천은 서북쪽으로는 곤륜산백 동북으로는 대파산맥이 있고 남쪽으로도 봉산산맥에 막혀있다. 사방 800km의 비옥한 분지를 이루고 있으나 이 땅으로 들어오는 길은 장강의 삼협의 거슬러 올라오는 방법과 파촉의 잔도를 통하는 방법 뿐이다. 유방은 장량의 충고에 따라 잔도에 불을 질러 항우에게 자신이 파촉땅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기회를 엿본다. 후대에 삼국에 쟁패하던 유비의 촉나라도 같은 방법으로 오나라를 속이는데 둘의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알다시피 유방의 한나라는 천하의 주인이 되고 촉나라는 잔도를 거슬러 올라온 위나라의 등애에게 멸망을 당하게 된다. 결국 난공불락의 요새도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의 역량과 지혜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잔도가 거의 없다. 아마도 산이 그리 높지 않은 관계로 절벽 중간의 지나가는 길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연의 훼손이 심하다는 점, 그리고 화강암 지대가 대부분인 관계로 석회암 지대에 비해 건설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신선거의 하일하이트인 남천교가 나온다. 120m 높이의 절벽에 길이는 100m 아찔한 높이에 발을 디딜 때마다 출렁거린다.     

여섯개의 밧줄을 이용해 고정시켰는데 바람흔들리기도 해서 편안하게 건너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생각들이 많이 이런 인공구조물이 그리 많지 않다. 또 이런 다리 하나 설치하려면 기자재를 옮기고 고정 확보물을 설치하기 위해 훼손하는 자연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그런 개념보다 사람의 편안한 관광을 우선시 한다. 그리고 기계보다는 인력을 활용한 작업이 많으니 결과적으로 자연 훼손이 적기도 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저런 장비를 동원하기 위해, 그 장비를 옮기기 위한 도로 먼저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간이 도르래 하나 설치해서 짐을 끌어 올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업을 사람이 매달려서 직접 행한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람도 많이 다친다. 신선거를 개척하고 길을 많드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안휘성 황산의 경우 1979년 덩샤오핑에 의해 개발이 명령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고 그 와중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사 중 목숨을 잃었다.    

탐방을 마치고 하산한다. 원래 걸어서 하산하려 했으나 케이블카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부러 케이블카를 탄다. 결과적으로 시간을 절약 할 수 있었으나 가이드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생긴다. 원래 가이드가 안내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할 때는 단단히 확인하고 점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신선거 탐방을 마치고 닝보로 돌아온다.    

닝보는 2016년 4월 닝보 북한식당의 여직원들이 남한으로 집단 탈출하여 갑자기 유명세를 탄 도시이기도 하다. 닝보는 고대부터 어항으로 그 명맥을 이어 가다가 5세기말 백제가 난징과 교역이 유리한 항구를 찾게 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당송 명대에 국내무역과 해외무역까지 담당하면서 그 세를 키워갔다. 1843년 아편전쟁에 이은 난징 조약항으로 개발되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이웃한 상하이가 무역의 대부분의 담당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1984년 개혁개방을 위한 대외무역항으로 다시 지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닝보의 랜드마크인 천일광장으로 향한다. 공원과 다양한 상점이 밀집한 지역이라 학생들에게 구경하고 쇼핑도 해 보라고 시간을 주었지만 그냥 서성이기만 한다. 언어도 안 통한다고 경험도 없으니 선듯 나서는 녀석이 없다. 사실 여행에서 쇼핑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미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쇼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여행을 가면 '뭐 사줄께 나 따라 다녀'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한 30분 지나면 아이들은 지루해 하면서 그만 가자고 보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쇼핑가자고 하면 대부분 싫다고 한다. 그럼 부모들은 여기까지 와서 귀찮아 한다고 아이들을 나무란다. 다른 방법이 있다. 우선 아이들에게 선물을 몇 개 사야하는지를 묻고 적절한 액수를 준다. 그리고 아이가 물건을 고르면 가격 흥정은 부모가 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신나서 돌아 다닌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기 물건 고르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러면 쇼핑도 즐겁고 여행은 신이 난다.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 효과 만점이다.  

닝보를 떠나 상하이로 향한다. 상하이 가는 길에 닝보와 항저우 사이를 잇는 항주만 대교를 건넌다. 항주만 대교는 6차선 36km 달하는 세계최장의 다리다. 이 다리로 항주만을 돌아가는 길 120km가 단축되었으면 시간도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다리에서 파란 바다를 볼 것 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이 바다를 왜 황해라고 부르는지 증명이라도 하듯이 누런 황토색이다. 그 다리 한가운데 있는 휴게소에서는 심지어 입장료까지 받고 있다. 우리도 입장료를 지불하고 휴게소 전망대까지 올랐으나 올라 온 보람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혹시 항주만 대교를 가시더리도 휴게소는 안 들리시는 편이 좋을 듯하다^^    

상하이에서 하루밤을 묵고 다음날 우리가 '홍코우 공원' 이라고 부르는 루신공원으로 행한다. 여기는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행한 역사의 현장이다.

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들려 간략한 설명과 당시의 의거 화면을 보면서 윤의사를 기려본다.

마지막으로 상하이 와이탄을 들리는 것으로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한다. 늘 진행되는 산행이지만 해외등반은  휠씬 많은 신경이 씌인다. 해외 나가는 행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외 산들이 지도교사들도 처음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설악산, 지리산에서는 휠씬 더 춥고 더운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리 당황하지 않는다. 늘 가본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공항에서 일이 생긴다. 출발 30분전인데 3학년 한 녀석이 비행기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엥 이걸 어째....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다그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헤매다가 간신히 찾아서 데리고 오는데 소선생이 다시 한 녀석과 뛰기 시작한다. 뭔데? 여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뭐? 이걸 어쩌나.... 비행기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오지를 않는다. 10분, 5분... 결국 아이들과 소선생만 먼저 보내고 잃어버린 녀석과 둘이 남아서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할 때 쯤 소선생이 나타난다. 다른 친구 녀석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애고.... 여권 가지고 있던 녀석을 한대 쥐어박고 급히 비행기 탑승하자,  비행기는 곧장 이륙을 시작한다. 학교의 결재부터 시작해 여권을 분실한 마무리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녀석들에게나 지도교사들에게 기억에 남을 산행 하나 추가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