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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산업도시 울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고 있다. 정확히는 울산의 과거, 현재를 통해 미래를 모색한다. 울산을 통해 대한민국 제조업과 노동의 미래를 살펴본다고 해도 될듯한다. 그런데 왜 하필 울산인가? 지은이는 그 이유를 몇 가지에서 찾고 있다.
첫째 울산은 이촌향도 이주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와 지역불균형의 역사 그 자체이다. 한국의 현대사가 만들어낸 주요 현상이 응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울산은 공장에서 '기름밥' 과 '쇳밥'을 먹고 땀흘려 일하며 한 식구를 먹여 살렸다는 가장의 신화가 완성된 곳이다. 최근 30여년간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위기였던 외환위기(1997), 글로벌 금융위기(2008), 제조업 구조조정(2015 - 2018) 을 거치면서도 그 신화를 이어갔다.
둘째로 울산을 향한 질문은 결국 1970년대 형성해 놓은 중화학공업 위주의 수출주도산업이 과연 어디까지 갈것인가 하는 불안을 담고 있다. 한국의 제조업은 간단히 요약해 일본의 생산 하청기지에서 출발해 불하받은 부품, 완제품을 분해, 결합 모방하고 도면을 베끼면서 성장하였다. 더불어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기 보다는 독일이나 일본의 로봇, NC선반 같은 장비로 생산성을 높이면서 세계 최고의 제조업 생산성을 확보했다. 그 사이 유럽은 장비와 노동력이 노후화됐고 미국은 제조업을 등한시 했으며 일본은 불황속에서 설비투자의 여력이 없었다. 한국의 산업화 이후 50년 동안 세계 5대 제조업강국이 됐다.
세번째로 울산은 한국사회의 핵심적 문제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원하청)문제와 여성 일자리 부족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도시이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와 단협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임금과 복지 및 연공급을 획득할 때, 상대적 저임금에 정규직이 될 보장 없이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 신분을 전전하게 만드는 경제의 원형이 바로 울산에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 즉 문화와 분업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울산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울산의 여성일자리는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어린이집교사, 요영보호사 등으로 대표되는 핑크칼라가 절대다수이다.
네번째로 울산은 보통사람의 일자리 ' 평범한 사람의 중산층 도시' 가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한국사회에는 성공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다. 입시경쟁을 치루고 좋은 대학을 나와 고위직 공무원이 되거나 고소득 전문직 혹은 대기업이나 전망 좋은 IT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울산은 그러한 대세와는 전혀 다른 다른 중산층을 모델은 제시해온 대표적인 도시이다. 공고나 전문대를 나와 자격증을 따서 취업이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변변한 학력없이 돈벌러 왔다가 직업 훈련소에서 한글과 기술을 배워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의 현대사가 있는 곳이 바로 울산이다. 이른바 '노동계급의 중산층' 이다.
저자는 이 분석 위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산업도시 울산은 지속가능할까?'
목차
1부 울산은 어떻게 산업의 수도가 되었나
1장 산업도시 울산, 기로에 서다
2장 미라클 울산, 울산 산업 60년 약사
2부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박동이 꺼져간다.
3장 한국 경제의 특수성과 제조업
4장 제조업 발전의 중심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추락하는 울산
5장 울산 노동자가 국민에서 사라진 이유
6장 정규직을 뽑지않는 엔지니어 공장
7장 생산성 동맹의 파열, 하청 구조로 연명하는 울산
3부 산업 가부장제의 그림자와 중산층의 꿈
8장 청년이 떠나는 생산도시
9장 생산도시를 기피하는 여성
10장 노동자 중산층 사회의 꿈은 폐기해도 좋은가
4부 산업도시와 대한민국의 미래
11장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두 도시 이야기
12장 RE100과 굴뚝산업의 미래
13장 메가시티론, 무엇이 문제인가
14장 생산도시와 대한민국의 미래
저자는 2부에서 울산이자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난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대한민국 제조업의 고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획 및 연구개발 기능이 줄면서, 제조업의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던 산업도시들이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다.
둘째로 많은 기업이 고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대신에 하청노동자를 광범위하게 활용함에 따라, 원가 절감 압박과 위험에 대한 책임을 떠안으며 산업도시로 연명하고 있다.
셋째로 울산 노동자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라진 이유에는 귀족노조라는 인식이 한몪을 한다.
결론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진단한다.
먼저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원가 비싸고 노조때문에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해외로 진출하게 된다는 자본의 분석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공장의 역할을 자임하였으나 1970년대를 지나며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임금과 적대적 노사관계 상황에서 기업이 역외 하청 생산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은 구상기능만 대도시에 남고 실행을 담당하던 산업도시의 제조업 고용이 취약해졌다. 따라서 제조 대기업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두번째로 노동의 관점에서의 접근도 문제가 있다 즉 노동의 관점에서 평론하는 이들은 1987년 이 민주노동의 정당성과 비정규직 처우 측면에 사태를 논증한다. 자본에 비해 약화된 '노동의 힘' 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원하청간의 노동시간 이중구조가 임금과 처우의 격차뿐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까지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의 책임을 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원청 생산직 노동자의 고용유지와 안전을 위해 광범위한 사내하청을 묵인했던 것도 노동조합이고, 자신들의 일감만 확보되면 다른 문제는 부차적으로 여겼던 것도 노동조합이다. 더불어 노동자의 생산성과 고숙련 문제를 회피했던 것도 민주노조운동의 모순이었다.
즉 필자는 자본과 노동조합 모두 현상황에 책임이 있음을 받아들여 한다고 주장한다.
울산의 제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등적 노사관계를 알아야 한다. 현대 자동차의 생산방식은 불신에 기대여 있다. 현대자동차는 노동자를 동반자로 신뢰하지 않고, 그들이 손끝 숙련을 강화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가 숙련도를 높여 라인을 세울까봐 걱정한다. 현대자동차는 가능하면 파업과 생산 중지를 막기 위해 많은 생산을 모듈화된 방식으로 외부에 위탁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건설 시절부터 익혀 온 하도급 관리 노하우는 중소기업의 이윤을 제약한다. 한편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는 회사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던 1980년대 이전의 기억과 1998년 정리해고를 겪으며 생긴 트라우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처우 개선을 넘어 고용 유지와 임금인상 및 복리 후생을 최대한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지난한 싸움을 벌여왔다. 이런 불신의 악순환 속에서 노동자의 숙련은 쌓이지 않고, 회사의 생산성 향상과 품질개선은 모두 엔지니어의 기술력에서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직무 교육 자체를 회피해오면서 작업장의 자동화를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회사는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의 정년퇴직만 바라본다.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는 회사가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위해 필요한 합의나 양보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결국 저자는 자본과 노동 모두 현상황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든 안 하든 한국경제 특히, 한국 제조업의 미래와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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