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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

알피니스트의 마음

2013-09-13

 

알피니스트의 마음 – 장꼬스트, 손경석역 1981 사현각


‘알피니스트의 마음’은 프랑스의 등반가 장꼬스트의 산행기를 포함한 유고문집이다. 장꼬스트는 (1904 – 1927) 23년의 짧은 삶을 살다간 불꽃같은 알피니스트였다.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간 그였지만 최후의 난봉이라 불리던 라메이쥬(3987m) 북벽을 초등하는 등 무려 15개 봉우리를 신루트를 통해 초등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1920년대에서 30년대는 윔퍼에 의해 마터호른이 초등된 이후 더욱더 난이도 높은 코스를 찾아 등반하는 이른바 머메리즘이 활짝 꽃피던 시기였다. 하켄과 캐러비나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북벽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많은 알프스의 연봉들이 새로운 코스로 초등되기 시작했으며 더욱더 어려운 코스를 찾는 등반가의 발길이 알프스로 향하던 시기였다.

장꼬스트는 1904년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났다. 시립병원의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15개의 봉우리를 초등하였다. 그것도 1923년부터 불과 4년간의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가 초등한 봉은 다음과 같다.

 

Aguilles d’Oronaya

- 995m, 758m, 785m, 829m 봉등 4개

Pointe de Henvieres(3273m) - 동벽 신루트

Tete de Cuguret(2905m) - 동계초등

Greponet(2775m)

Tete de Moyes(3110m) - 북서능 프랑스인초등

Brec de Chambeyron(3388m) - 북서벽초등

Aiguille Pirerre Andre(2850M)

Gerbier(2773m) - 동계초등

Aiguile de Chambeyron(3409m) - 동계초등

Tete de Moyse(3110m) - 동계초등

Aiguille de Chambeyron(3409m) 북벽초등

La Meije(3987m) - 북벽초등

 

‘알피니스트의 마음’ 에는 장꼬스트의 등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등반기술들에 언급한다. 특이할 만한 점은 산에서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산에서의 죽음이란 하나의 특권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선 개죽음이 아니다. 자연의 제 요인이 자기보다 강한 까닭에 싸움 속에서 쓰러졌다는 것은 훌륭한 것이 아닌가’ 물론 이것이 죽음을 미화하거나 장꼬스트 본인이 죽어도 좋다는 식의 언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의 결연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역자인 손경식 선생은 이런 언급이 불안했던지 ‘장꼬스트는 산에서 죽는 것이 가장 보람있다고까지 했으나 아마 본인이 살아서 책을 출판한다면 수정해서 썻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산에서의 죽음이란 무모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뿐 아니라 자칫하면 젊은이들에게 지나친 정열만을 복 돋아 주는 일 이외에는 오해를 자져오기 쉽기 때문이다’ 고 언급하면서 경계하고 있다.

                                                                                            라메이쥬

 1920년대는 알프스등반의 선구자인 영국인들에 의해 다양한 등반이 추구되고 있을 때이다. 그러나 영국에는 연습할 수 있는 정도의 산만 있었지 알프스 같은 고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알프스 설산을 찾게 된다. 자신들이 잘 모르는 알프스 산들을 현지 가이드를 앞세우고 등반하게 된다. 즉 그들은 가이드를 동반해서 알프스 수많은 봉우리들의 초등자가 되었고 알프스 등반 황금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기에 본토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등반가들은 산에 대한 학술조사를 외치며 가이드를 동반하는 아카데믹 알피니즘이 아니고 등반방식의 아카데미즘을 주창하면서 가이드 없는 등반 풍조를 일으킨다. 장꼬스트 또한 가이드 등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나타내고 가이드 없는 등반을 예찬한다. ‘등반을 거듭할 수록 나는 가이드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가는 등산이 가장 보람되고 가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고 하면 화폭에 아주 독창적인 작품을 그리는 자만이 화가로서의 명예가 있듯이, 하나의 등반에선 참된 자기의 능력으로 이룩하는 자만이 [알피니스트] 로서 명예를 지닐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장꼬스트의 등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실상 등산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즐거운 해후를 주는 것은 등산뿐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이후에도 다시 만나지 못할지 언정, 그러나 거리낌 없는 친한 벗이 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산이다’

등반 준비와 등반과정, 그리고 하산과정도 무척 세심하게 신경써야한다고 강조한다. ‘산행을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일이지만, 잘 추진시켜 운행되고 성공할 때엔, 내심에 다시없는 기쁨과 꿈을 실현시킨 보람이 주는 만족감에 비할 바 없는 행복으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북벽에 올라가려면 새벽에 시작해야 한다. 이때는 눈이 얼어 있고 썩은 얼음이나 신설에 고통을 받지 않는 법이다’ ‘하산은 어느 때라도 올라갈 때보다 델리케이트한 것이다. 자일로 연결되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발디딤을 볼 수도 없고, 찾지도 확인도 못하며 디뎌야 되기 때문이다. 벌써 목적을 달성했겠다 열의도 감상도 사라지고 다만 빨리 내려가려는 생각뿐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장꼬스트는 절대로 무모한 등반가 아니였던 것이다.

그는 머메리와 기도레이를 자신 인생의 롤모델로 삼은 듯 보인다. ‘나는 등반 사상 가장 훌륭한 알피니스트였던 머메리의 생애에 절찬을 바친다. ... 조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산에 대한 태도에서 나는 무척 감격하고 말았다. 나도 그와 같이 되고 싶다’ 그리고 친구에게 ‘기도레이’의 [알피니즘. 아크로바틱]이란 저서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산에 다니기는 했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상황으로 산에 신경 쓸 여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1990년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조금씩 산과 그 주변에 대한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즈음 장꼬스트의 ‘알피니스트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그의 산에 대한 열정, 강인한 도전정신, 불굴의 의지는 이십대의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더욱이 그때쯤 알게 된 라인홀트메스너와 예지쿠쿠츠카의 14좌 등반 경쟁은 젊은 가슴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제 매주 산에 가며 나도 히말라야로 가는 꿈을 꾸게 된다.

사실 이때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또 다른 열정으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까하는 고민을 하던 시기이다. 브라질에 살던 선배의 영향으로 남미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브라질행이 구체화 될 즈음, 결국 나를 붙잡은 것은 인수봉, 선인봉에서 바라보던 우리 산의 정겨움이며 장꼬스트의 ‘알프스! 알면 알수록 더욱 당신은, 충실한 벗들을 기쁨속으로만 몰아넣는다’ 는 언급처럼 같이 북한산을 오르내리던 동료와 선배들의 얼굴들이었다. 그렇게 대학원을 마치고 취직을 하였다. 처음 2년간의 회사생활. 너무 바빠 산이라곤 생각도 못하던 시기, 주말도 휴일도 없이 그저 회사 집, 회사 집만 왔다 갔다하던 생활에 넌더리리가 날 때 쯤 학교에서 연락이 온다. 학교? 지금보다는 시간이 더 날테고 방학도 있으니 산에 다니기가 더욱 쉬워지리라는 기대 속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만만한 세상살이는 없는 법인가보다.

학교로 옮기게 되며 산악회 일행들과 그전부터 꿈꾸었던 맥킨리 등반을 구체화 하기 시작한다. 묵묵히 그러나 열심히 훈련을 하며 등반계획을 구체화 하던 시기, 하나의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맥킨리 등반 최적기는 4,5월 봄, 모든 고산이 그렇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지면 등반이 불가능하게 된다. 문제는 이 시기가 방학이 아니라 것이다.

결국 교장선생님께 허가를 구해본다.

이정표 : 선생님! 제가 알레스카의 매킨리산을 등반하고 오려고 하는데요..
교장선생님 : 그래요! 언제 가시게?
이정표 : 그게... 저 4월중이라...
교장선생님 : 그래요, 그럼 수업은 어떻게 하시게?
이정표 : 그래서 어떻게 강사로 대처를 해서 다녀올 수는 없는지?
교장선생님 : 그래요? 그럼 다녀오시지요!
이정표 :정말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 그런데 가셔서 안 오셔도 되겠습니다!
이정표 : 네? 애고.....

결국 산에 못가게 된 후 휴직을 할까, 그만둘까 하며 별의별 궁리를 다하게 된다. 그러나 ‘먹고 살고 나서 산이지, 밥 굶고 무슨 산이냐?’ 선배들의 한마디에 지금까지 그냥 살고 있는 것 같다.

고산을 가고 히말라야를 가야만 산악인은 아니듯 장꼬스트 마음을 전달하고 자 하는 손경석선생님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장꼬스트의 산에 대한 주옥같은 마음이 우리 젊은 산악인들에게 다시없는 공감을 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산악인, 쓰는 산악인, 연구하는 산악인, 그것은 산악인이란 등산행위만이 그 요건이 아닌 것을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