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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

한권의 책 - 청춘의 독서, 유시민

2010-01-26

 

유시민이라는 저자는 언급이 필요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는 있는 정치인이자 사회활동이 활발한 저술가 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이를 지식소매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유시민이 오랜 정치활동으로 인한 공백을 깨고  내놓은 책이 [후불제 민주주의]와 바로 이책 [청춘의 독서]입니다.

 

 [후불제 민주주의]  그가 몸 담었던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와 이명박정부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적 전망을  담고 있다면, [청춘의 독서]는 인간 유시민 젊은 날 사고체계를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책들에 대한 소개라고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목차를 살펴볼까요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표도르 도스도엽스키 [죄와벌]

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리영희 [전화시대의 논리]

3.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 - 칼 마르크스,프리드리 엥겔스 [공산당선언]

4. 불평등은 불가피한 법칙인가 - 토마스맬서스 [인구론]

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산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 맹자 [맹자]

7. 어떤 곳에서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 최인훈 [광장]

8.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 사마천 [사기]

9. 슬픔도 힘이 될까 - 알렉사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찰스다윈 [종의 기원]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고 하는가 - 소스타인 베블린 [유한계급론]

12.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 헨리조지 [진보와 빈곤]

13.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4. 역사의 진보를 빋어도 될까 - E H 카아 [역사란 무엇인가]

등 14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된 책들은 대부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들이지요. 이 책 [청춘의 독서] 를 읽기 시작하며 가장 놀란 것은 이렇게 유명한 책들인데 실제로 제가 읽은 책이 몇 권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1년에 적어도 5,60권에서 많게는 100여권까지 책을 읽는다는 제가 정작 고전이라는 분야로 들어가서는 너무나 빈약한 독서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이것은 늦게 시작한 독서경력과 문학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는 저의 독서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흔히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 문학 전집 등으로 대표되는 문학에 대한 탐독과 관심은 초중고 시절에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 유시민도 이 과정을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부터 별로 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남과 어울리며 놀고, 운동을 좋아하는 제 성격에 방구석에 쳐 박혀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꽁꼬매(표현이 맞나요^^), 다방구, 비석치기, 오징어, 십자가, 오재미, 그리고 축구 등 40대 중반인 제 나이  흔한 이런 놀이를 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비로서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무언가 읽고 생각했다는 독서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독서량을 보이다가 고등학생이 돼서 공부한다고 책을 못 읽어 답답했다는 유시민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눈 떠가며 구체적으로 무언가 알고 싶었던 욕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당시 은사이신 시인 정희성선생님께 김지하가 겪은 고초에 대한 들으며 주먹을 꼭쥐고 신음을 토했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이런 갈증을 달래주었던 책 중 하나가 여기 소개된 [전환시대의 논리]였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형의 책꼭이에 꼽혀있던 보라색표지(그렇게 기억합니다만 맞나는 모르겠니요)의 책 한권. 북한을 북괴로, 중국을 중공으로, 베트남을 베트콩으로 부르던 박정희식 시각에서 한치도 못 나갔던 저에게 이 책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저보다 몇년 위인 유시민도 꼭 같은 경험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간저는 유시민과 마찬가지로 지하대학(저희 때는 써클이라고 했습니다)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이렇게 늦게 독서를 시작하다보니 차분하게 문학작품이며 고전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급한 것^^ 싸우는 데 필요한 것이 먼저입니다. 아마도 당시 제가 문학작품에 흥미를 못 느끼고,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남에게 책도 자주 추천해 주면서 정작 자신은 [죄와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절름발이 독서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책 14권 중 제가 제대로 읽은 책은 5권 정도입니다.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선언] [맹자] [사기] [역사란 무엇인가] 인데, 그마저도 얼마나 제대로 읽었나는 의문입니다^^ 

[공산당 선언]은 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 목록의 맨 위자리쯤 되겠습니다. 저작이라기 보다는 선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동적 문구들. 어느 집회장에서 읽혔다면 링컨의 케티스버그 연설, 마틴루터 킹의 ' I have a Dream' 을 가볍게 제치고 가장 위대한 연설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만한  명 문구들.... 특히 가슴을 을 울리는 마지막 문장 '만국의 프로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그대들이 얻을 것은 세계이며 그대들이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다'(유시만 인용과는 좀 다른데, 저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마오쩌뚱 선집의 첫장을 장식한 全世界 無産者 聯合起來 를 한동안 제가 가진 모든 책 뒷면에 적었던 기억이 생생하군요.

[맹자]는 전공인 관계로 원전으로 읽기는 했습니다만 당시는 그리 큰 감흥을 받았던 저작은 아니었습니다. 혁명을 꿈꾸는 20대의 청년의 심사를 달래주기에 공,맹은 너무 점잖았던 것 같습니다. 한가지 기억나는 문장이 있습니다.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 하늘의 이치는 땅의 일만 못하고 땅의 일은 사람의 일만 못하다 정도로 해석되는 문장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에게 달렸다는 취지라고 할까요.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인데 마오쩌뚱의 주관능동성이나 김일성의 주체사상과도 어느 정도 연관지을  수 있는 언급이라고 하겠습니다.

 [사기]는 열전만 읽은 경우입니다. 아마도 사기 열전에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인물상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사마천 자신의 극적인 인생만큼이나 다양한 성격과 색깔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말그대로 캐랙터의 백화점이라고 할까요^^ 특히 형가로 대표되는 자객열전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장예모의 영화 [영웅]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부분입니다. 사기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초와 한나라, 항우와 유방의 천하쟁패와 관련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항우에 충성했던 인물 뿐 아니라 유방에 충성했던 인물들도 대부분 나중에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토사구팽으로 대표되는 회음후 한신 뿐 아니라, 유방을 보필했던 수 많은  인물들이 실제로 반란은 일으키거나 아니면 반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죽습니다. 유방의 측근 중 그 후대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남은 인물은 하우영 정도 일 것입니다. 한신,번쾌,팽월,종리매,영포, 관영,신기 등 유방을 옆에서 보좌했던 대부분 공신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진리만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유방 자신도 항우에 쫏겨 도망을 가며, 같이 탄 자식들 때문에 마차의 속도가 늦어지자 자식 둘을 마차에서 내쳐 버립니다. 물론 수하인 번쾌가 이들을 목에 매달고 끝까지 살려내 이 공로로 상을 받기는 합니다만 자식보다도 우선되는 권력의 비정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는 읽느라고 무척 고생한 책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은 유시민도 지적했듯이 책의 논점과 별로 관련이 없는 당시 영국의 자질구래한 상황과 수 많은 사례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의 지적 처럼 점잖게 이야기 하면  [카는 지극히 영국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고, 그래서 이 책에도 영국 지식사회의 상식과 교양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고, 카 자신이 이론을 펼치기 위해 수 많은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예시하여 이해에 대한 어려움을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은 아마도 카에 대한  알고 있는  선입견^^을 꼭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 자신이 그렇듯이 절름발이 독서의 특징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한다는 것이겠지요.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아마도 이 문장을 읽기 위해 책을 잡고 그렇게 씨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읽어봐 할 이유도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