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10
카슈가르를 떠나 옥의 도시 호탄으로 향합니다.
호탄으로 가는 길은 황량한 사막을 예상했건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바람을 막고 도로를 지키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 심기입니다.
실크로도에서 가장 흔히 볼수 있는 백양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미루나무인데 다른 점은 껍질이 하얗다는 겁니다. 사막 기후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자라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이 나무를 심습니다. 바람을 막고, 모래를 막고, 태양을 막고, 백양나무는 물과 더불어 말 그대로 실크로드의 생명줄입니다.
그 넓은 고비,타크라마칸 사막 비롯한 실크로두드 전역에 분포하는 식물은 몇가지 안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잡초 수준의 풀인데도 사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입니다.
홍류입니다. 다 자라면 키가 1m 남짓합니다. 사막에 잘 적응한 풀로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휭단하는 사막공로(沙漠公路) 양 옆으로 심어논 것도 이 풀입니다. 홍류가 없다면 사막공로도 모래속으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낙타풀입니다. 염분이 많은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말이 좋아 풀이지 가시나무 수준입니다. 낙타는 사막을 횡단하면서 이 풀을 먹는다고 합니다. 가시가 워낙 억세서 먹기에는 적절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낙타는 입에 피를 흘리면서 이 풀을 먹는다고 하네요, 이거 이외에 사막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낙타는 이 낙타풀을 통해 수분과 양분, 그리고 염분까지 얻는다고 합니다. 정말로 경이롭기까지 한 낙타의 생명력입니다.
그리고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누워서 천년을 지낸다는 호양목이 있습니다. 이 황량한 사막에에 적응한 놀라운 식물등입니다.
카슈가르에서 서역남로 560km 지나 호탄에 도착합니다.
호탄은 티벳트어로 '옥이난 곳' 이라는 뜻으로 인구 120만명이 사는 현이자 도시의 이름입니다.
호탄은 서역 남로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로서 곤륜산맥에서 발원한 백옥하(白玉河)와 묵옥하(墨玉河)가 동서로 흐르는 땅입니다. 호탄은 기원전 1세기에 불교가 유입되고 11세기에는 이슬람교가 유입됩니다.
호탄은 옥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특히 백옥하를 따라 내려온 옥을 水玉이라하여 옥중에 최고로 쳐줍니다. 지금도 백옥하에는 옥을 주워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백옥하 주면에 사는 위구르족의 상당수는 아예 아침마다 백옥하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강바닥을 뒤지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누구는 무슨무슨 옥을 캐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돕니다. 아직도 이어지는 중국판 골드러시라고 할까요.
저도 들어가 여기 저기 헤매며 돌을 주워봅니다. 몇개의 돌을 주워 나오지만 옥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혼자서 옥이라고 믿으면 되겠습니다^^ 백옥하 옆에는 즉석 옥시장이 열립니다. 많은 위그루인들이 옥인지 돌인지 구별도 안 가는 것을 옥이라 부르며 사라고 달려듭니다. 허나 어쩌나, 저는 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또 모르겠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린 여자는 동물을 좋아하고,
젊은 여자는 식물을 좋아하고,
나이든 여자는 광물을 좋하한다고...
숙소 건너편으로 보이는 호탄시내입니다. 호탄에서의 하루밤이 지나고 매라카왓키 고성으로 향하는 아침,작은 헤프닝이 벌어집니다.
아침 산책길에 둘러보니 숙소옆으로 경찰서가 보입니다. 여기저기 테러소식에 폴리스 라인을 두르고 총든 경찰이 경비까지 섭니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던 저는 총을 든 경찰의 모습이 이채로워 경찰 사진을 한장 찍습니다. 사진찍는 모습을 본 경찰이 소리치며 다가와 카메라를 빼앗습니다(위그루인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카메라로 자신의 총든 모습을 확인한 경찰이 전화를 합니다.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겠지요. 사진을 지우고 가겠다고 해도 기다리라고 하면서 보내주지 않습니다. 가이드도 나오고 일행들도 나오고, 우와좌왕, 조금 있다가 호탄경찰서 외사과에서도 통역을 대동하고 출동. 이거 일이 커지게 생겼습니다. 출발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저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결국 신분 확실한 외국인이 경찰사진 한장 찍었다고 이럴 수 있느냐는 일행의 강력한 항의에 사진을 지우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로 합니다. 누구는 싫어 한다고 하지만 역시 이런 경우 '떼법'이 효과가 있습니다^^
마무리는 되었으나 졸지에 '호기심 많은 철없는 여행객'이 되버린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애고 애고)
매라카왓티 고성으로 향합니다. 매라카왓티 고성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길이 험해서 가 아니고 고성 근처에 사는 원주민들의 밥벌이 수단이 돼기 때문입니다.
길 중간에 차를 막고 마차를 타지 않으면 못들어 간다고 합니다. 뭐 저도 그리 싫지 않습니다. 언제 위그루족의 당나귀 마차를 타보겠습니까.
당나귀는 위그루족의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이자 식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당나귀 고기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발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동물을 먹을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중국인은 당나귀 고기를 좋아합니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네요. '하늘에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고기' 즉 하늘에서는 용이 제일 맛있고, 땅에서는 당나귀가 제일 맛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용고기를 먹을 수 있는 용빼는 재주는 없으니 결국 당나귀가 가장 맛있는 고기가 됩니다.
당나귀에 얽힌 이야기는 한가지 더 있습니다. 위그루족은 무슬림이니 당연히 손님과 친구를 환대합니다. 손님이 유목민의 텐트인 겔에 와서 지내도 절대로 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머무는 기간이 자꾸 길어집니다. 그러면 원래 추을 때 들어와서 식구처럼 지내는 당나귀가 춥지 않아도 겔안으로 들어 옵답니다. 그리고는 손님 옆에서 잠니다. 식구처럼 지내는 당나귀니 겔안으로 들어온들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만는 결국 냄새를 못 견디는 손님은 이제 그만 가라는소리구나 하면서 떠나게 된다고 하네요.
어! 당나귀 마차 값은 다 지불했는데 누군가 드러 누워서 통행세를 걷습니다. 가이드 얘기를 들으니 차만 들어오면 드러 누워서 통행세를 내라고 한답니다. 재미난 광경에 일행들 박장대소를 합니다. 5원(한국돈 700원정도)을 주니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1원 짜리 지폐 5장을 주니 좋다고 일어나 길을 비켜줍니다. 길에서 통행세를 걷을 때도 산수는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호탄왕국의 수도로 알려져 있는 매르카왓티 고성터입니다. 넓디 넓은 황량한 공터에 약간의 성벽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호탄왕국은 기원전부터 유티안 (于田)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로 번성하다가 세력을 키워 3세기부터 서역남로의 주요국가로 부상합니다. 5세기 경 호탄왕국이 유명해진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제조법에 관한 것이지요. 비단 제조법은 호탄왕국을 거쳐 세계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비단은 당시 아주 중한 수출품이자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비단의 원료와 직조법을 엄격한 비밀에 붙이고 이것을 유출하는자는 사형에 처하는 법까지 제정하고 있었습니다. 호탄왕국의 왕은 비단 직조법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뽕나무 종자와 누에 애벌레가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엄격히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여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호탄 왕은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위해 중국 황실에 공주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청을 올리는 것입니다. 결혼식이 임박하자 호탄 왕은 자신의 신하에게 공주를 데려오라 명하면서 ‘우리 땅에는 비단도 없고 뽕나무나 누에 애벌레도 없다고 말하고 비단 옷을 계속 입고 싶으면 그것을 가져와야 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계속해서 비단옷을 입고 싶었던 공주는 뽕나무 씨앗과 누에 애벌레를 머리 장식의 안감에 몰래 숨겨 국경을 무사히 통과합니다. 아무리 엄격하게 검사를 한다고 해도 차마 공주의 머리 장식까지는 검사할 수 없었겟지요.
이런 호탄왕의 기지로 인해 중국 비단에 대한 독점권과 비단제조 기술은 호탄을 비롯한 서방으로 계속 전해지게 됐고 중국은 비단에 대한 독점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마치 문익점 선생의 원나라에서 붓 뚜껑에 목화씨를 가져와서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키질 석굴과 막고굴을 약탈한 희대의 도굴범(서방에서는 당연히 탐험가라고 기록하겠지요) 스타인이 견왕녀도(絹王女圖)를 발견해 사실임이 입증됩니다.
도심에서 서쪽으로 10km 떨어져 있는 요르칸 유적지입니다. 3 ~ 8 세기경의 우기국 유적으로 천여명의 대상들이 편안하게 살았다고 전해지는 큰도시 유적입니다. 많은 유물과 금붙이 그리고 불교유적도 확인되었습니다만, 1985년 유적보전을 위해 4,5m깊이로 다시 묻어 버리는 바람에 보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요르칸 유적지 가는길에 있는 포도 넝쿨길들이 더 인상적입니다.
장장 2km 포도넝쿨이 이어진 엘라메 마을입니다. 백옥강의 물을 끌려들여 다양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은 반갑다고 저희 일행을 졸졸 쫏아 다닙니다.
자그만한 넘이나 쬐금 큰 넘이나 졸졸 다라 따라니며 반갑다는 얘기를 합니다. 꼬질 꼬질한 옷, 누런 이빨, 그러나 천진난만한 저 미소. 저 어렸을 때도 저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놀았지만 막상 헤어지는 데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줄 수고 없고, 사탕이나 과자라도 사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동을 위해 차로 돌아가는 중 길옆의 수로에서 까르르 하는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이 수로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얼른 중요부위를 가리는 센스도 있습니다^^ 여기는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오아시스의 물놀이라... 슬슬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것이지요. 일행 중에 여성분만 없었다면, 훌훌 벗고 팬티바람으로 물속에 한번 뛰어드는 것이었는데... 뭐 옷을 입을채로 들어가도 건조한 사막에서 마르는 것은 금방인데, 그저 바라만 보다가 옵니다. 여기까지의 저의 한계 같습니다.
이제 여행기가 절반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총 8 편 정도 써보려고 합니다. 다음은 520km의 타크라마칸 마막을 관통하여 도달하는 쿠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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