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실크로드의 전진기지 우르무치 - 깜장소의 비단길 나드리 2편

우르무치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실크로드 상에 있었던 역사도시는 아닙니다. BC 1세기 한나라가 개척한 돈황에서 하미를 통하는 천산북로를 이곳을 지나기는 하지만 세상에 이곳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지요. 8세기 당이 물러간 이후 위그루 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이 살았던 지역입니다. 18세기 들어 청나라가 중가리아 분지일대를 정복하고 주변의 여러 나라들의 복속시키면서 다시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옵니다. 이후 강력하게 저항하는 무슬림과 이를 제압하는 청나라의 공방이 이어집니다. 청은 1884년 무슬림의 반청운동을 진압하고 신장성이라 칭하고 우루무치를 성도로 삼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1944년 위그루족과 카자흐족은 쿠처를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웁니다. 물론 1949년 중국군이 진주해 1955년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를 세웁니다.  
우르무치는 몽고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입니다. 천산산맥의 북쪽기슭의 915m의 분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8년 8월8일 중국의 올림픽 개막일에 베이징에서 우루무치로 향합니다.


많이 보이던 구름이 서쪽으로 갈 수록 적어집니다. 사막으로 다가간다는 표시입니다. 이런 경험은 몇 년전 유럽을 갈 때도 경험했지요. 아라비안 반도의 롭알할아리 사막을 지날 때 구름 이 한점도 보이지 안하다가 갑자기 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중해가 나타납니다.


고비사막입니다.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은 곳이지요. 황사와 관련이 있으니 악연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곳에 사막이 생긴 것은 전적으로 히말라야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서양의 수증기를 먹금은 구름은 북쪽을 지나다가 히말라야에 부딕칩니다. 모든 수증기를 내려놓고(?) 건조한 바람만 산맥을 타고 넘어 옵니다. 그러나 이곳의 강수량은 기것해야 1년에 20mm 정도입니다. 반면 히말라야 남쪽 사면은 1년 강수량이 12,000mm입니다.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배웠지요. 인도의 아샘지방^^ 



인구 300만의 우루무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실크로드상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대도시에 가까습니다. 위그루족과 카자흐족이 대다수였으나 중국의 서부 대개발이 시작되고 도시가 커지면서 한족의 유입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족의 유입이 많아 질 수록 소수민족은 도시 밖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장사수완이나 자본의 규모의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천산 천지로 떠납니다. 천산 천지는 우무무치에서 110km 떨어져 있습니다. 흔히 110km 하면 우리는 ‘한시간 반이면 도착하겠네’ 하지요. 그런데 중국은 시간을 알 수가 없습니다. 도로 사정 따라 현지의 상황 따라 다릅니다. 심지어는 70km를 가는데 무려 5시간 반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 날도 3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 진 거 라네요(자전거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르겠네요^^)



그런데 가다보니 기름을 넣는다고 내리라고 합니다. 앵 기름을 넣는데 왜 내래? 원유 값 폭등 이후에 이른바 제한 주유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도시 내의 주유소는 모두 폐쇄시키고 도시 외곽을 주유소만 영업을 하면서 주유할 때는 다 내리라고 합니다. 왜 내려하냐고 하니까, 자기들도 모른답니다. 시키니까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걸 왜 시키는 거지. 하긴 우리도 그랬지요. 신분증 달라면 주고, 가방 열라고 하면 열고, 경찰서 가자면 가고..... 



가다보니 원전을 공사하는 현장이 보입니다. 사막에 원자력발전소라. 우리네 알고 있는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발전소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물이 많은 바닷가가 유리합니다. 물론 원전은 원전의 냉각문제 때문에 더 더욱 그렇구요. 그런데 사막 한가운데라니. 물어보니 인공 호수를 만들어서 물을 충당한다고 합니다. 물론 우루무치가 전세계 모든 도시 가운데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라고 하니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만 조금 낮선 풍경인 것은 분명합니다.



천산 천지입니다. 천산사맥의 두 번째 고봉 보고타봉의 중턱에 있습니다. 멀리보이는 설산이 보고타봉입니다. 천지하니까 무지허니 친근합니다. 중국에 천지라는 호수는 모두 3군데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백두산 천지가 있구요. 여기 천산 천지, 다리고 다른 한곳. 크기는 백두산 천지보다는 작습니다. 그래도 빙하 녹은 물의 빛깔과 멀리 보이는 만년설이 신비감을 더해줍니다.



서왕모를 기리는 도교사당이 보이는군요. 전진파의 구처기가 세운 철와복수관입니다. 전진파의 구처기 하니 생각나는 것이 많습니다. 구처기는 무당의 장삼봉과 더불어 실존인물이자, 영웅문이나 사조영웅전같은 여러 무협지에 등장하는 단골 손님입니다.
무협지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등학교때 무협지에 빠져 거의 전문가 수준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물론 동네 만화 가게에서지요. 하루에 6,7권 읽는 것은 기본이니 무협지가 나오면 의뢰가 들어옵니다. 이 무협지가 잘 나갈지 아닐지를 읽고 판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덕에 무료로 많은 무협지를 섭렵했습니다. 결국 마음이 맞는 친구넘과 무협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텍스트가 될 만한 책과 여러가지 자료, 나름대로 정리한 9파 1방 이외의 정파. 사파의 계보도 등을 만드며 무협지 집필의 전 단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친구넘이 소장한 책과 자료들을 장농속에 숨기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발각, 친구넘은 비오는 날 먼지날 만큼 얻어 터지고 책과 자료들은 한줌의 재가 되었지요. 
 
 천지는 서왕모의 전설로 유명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서왕모는 주나라 목왕과의 로맨스를 벌인 인물입니다. 서왕모는 도교의 신으로서 추앙받는 인물로 여기 천지에서 목욕을 하였다는군요.
서쪽에 미인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주목왕이 곤륜산 도착해 서왕모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중원에서 전란 소식이 들려옵니다. 3년안에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지만 오지 않습니다. 주나라 도읍 호경이 서안 근처이고 곤륜산은 지금도 중국의 서쪽끝이니 거의 4000km 넘습니다. 그런데 주나라 목왕이 여기까지 오려면 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아무리 빨라도10년 이상은 걸렸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돌아가는데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럼 한번 왔다가는 데 20년이라.... 그러니 한번 가면 다시 못 돌아올 것이겠지요^^
 



호수 주변에 겔을 만들어서 하룻밤 유숙 할 수도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은 굴뚝인데 시간 관계상 그냥 가야합니다. 파오는 카자흐말이고 몽골어로는 겔이라고 합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나 겔과 파오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겔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거실 겸 방입니다. 손님을 중요시하는 유목민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반면 파오는 입구에 들어서면 주방이고 그 뒤로 거실이 있습니다. 유사시 주방에 있는 칼을 무기로 쓸 수 있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수 많이 문명과 세력이 부딪치고 충돌하는 고단한 삶이 반영되어 있는 같습니다.



서왕모가 발씻은 곳이랍니다. 소천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라면 손씻은 곳, 혹은 눈물을 흘린 곳 이라고 할 것 같은데. 중국 사람들은 발 씻은 곳이라고 하네요.

  

천지의 물이 흘러 넘쳐 아래로 흐르고 있습니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수입니다. 석회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고여 있는 물의 빛갈은 매우 곱습니다. 그런데 사실 식수로는 그다지 좋은 물이 아닙니다. 천산산맥 아래 유목민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것도 물이 한 원인이라고 합니다.


우루무치에서 70km 떨어진 남산목장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목장으로 유명하여 품질 좋은말을 많이 생산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개간되서 밀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유목민인 카자흐족도 이제 양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밀을 비롯한 곡물과 채소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겔이네요. 유목민은 건조한 사막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차를 많이 먹습니다. 그 차는 중국인들이 먹는 차와는 달리 녹차와 야크나 양의 버터를 섞은 차입니다. 입으로 빠져나가는 수분을 막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입니다. 하루에 20잔 이상을 마시는데, 오래전에 보았던 유목민의 차 마시는 습관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몽양 여운형 선생이 40년대 초 피압박민족대표자회의(정확한가요?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참석하기 위해 육로로 모스크바까지 가셨다는군요. 중간에 몽고의 유목민 겔에서 자고 일어났습니다. 손님을 대접한다고 아침부터 차 대접을 합니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버터차를 마십니다. 먼저 마신 사람은 혀로 잔을 깨끗을 핥아서 닦습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넘깁니다. 대 엿번째 앉은 선생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고 꿀꺽 차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 나자마자부터 고민이 되더랍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저요!!(선착순입니다) 그리고 속 울렁거림도 없이 잘 마시고 혀로 깨끗이 닦아서 옆 사람에게 넘깁니다. 득의에 미소를 짓고 있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머리를 스칩니다. 어제 먹고 저 잔을 닦은 적이 있나? 아니 오늘 아침에는 닦은 적이 있나? 몰론 닦은 적이 없지요^^
아마도 혀로 잔을 닦는 것은 물이 부족한 지방에서 소독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게 혀로 깨끗이 닦은, 이런 차 한잔 드셔보실 수 있겠습니까? 

 


오는 길에 들려 본 카페트 공장입니다. 순전히 수제로 제작을 한다고 합니다. 가격은 우리 돈 몇 만원부터 몇 억원까지 종류가 다양합니다. 위의 아줌마가 짜고 있는 카페트도 하나 제작에 1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가격은 우리돈 2,300만원 정도구요. 카페트를 짜다가 눈이 먼 사람이 많아서 수제 카페트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카페트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사람은 무슬림입니다. 겔의 유일한 장식품. 그리고 하루에 다섯 번 드리는 기도를 위해 늘 카페트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카페트를 짜는 사람은 거의 한족입니다. 어디가나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하루 종일 카페트를 짜는 엄마 옆에서 하루를 보내야하는 하는 아이의 놀이터도 여기군요.



우루무치 남문 바자르입니다. 바자르는 위그루어로 시장입니다. 신장에서 가장 큰 바자르입니다. 없는 것이 없다고 소문이 나 있는 곳입니다. 온갖 잡화도 있고,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 아시아의 온갖 물건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매치기 많기로도 악명이 높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쩐지 이런 휘황찬란한 바자르 보다는 나중에 카스나 또는 소도시에서 만나는 시골 장터같은 바자르가 휠씬 정감이 갑니다. 



어떻습니까. 정감이 더 가지 않습니까? 장날이라고 장농 깊이 숨어있던 이쁜옷들을 꺼내입은위구르의 아낙내들입니다. 꼭 제 고향 병천 아우내의 장날 같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치 찬란한 색깔의 저 신발하며

 

  

재봉틀, 실로 신발을 수리하는 저 위그루족 아저씨 등도 민족은 다르지만 매우 익숙한 정경같습니다. 

 


옷이 아무리 꼬질꼬질해도 아이들의 미소는 어디나 비슷합니다.
여기의 장날은 장소마다 다릅니다. 일요일에 서는 장도 있고, 월요일도 있고 그런데 대부분 7일장인 것 같습니다. 하여간 장날은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축제의 날 입니다.  



장보다가 이런 만난 케밥도 먹고요. 기름이 많아 보이는 데, 의외로 담백하고 정말로 맛있습니다. 가격은 5원(우리돈 700원)입니다.   
 우루무치는 수박겉할기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