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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강산을 다녀와서(2007.7.24)

금강산 다녀왔네요. 내금강을 갔었는데 여행기 올려봅니다.


지난 8월 6,7,8일 금강산으로 사회,도덕과 교사를 중심으로 연수를 갔습니다. 물론 다른 교과도 있기는 합니다만, 통일연수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봐서 뭔가 통일에 대해 아이들에게 전달할 내용을 찾으라는 뜻이겠지요.

출발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오전 7시에 합니다. 그런데 교사연수단 130명 이외에 정장차림의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 개성으로 가는 친구들 같습니다. 어느덧 버스는 출발하고 화진포 현대아산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남쪽 출경사무소인 출입국 관리소에 도착합니다.

 

  


 위의 사진은 남북출입사무소와 나란히 있는 철도남북출입사무소입니다. 이 안쪽이 남쪽의 기차역인 제진역입니다. 물론 철도는 지난 5월 시험운행을 한 후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철도는 이어져 있군요. 지금 보이는 이 철도가 금강산,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로 해서 베를린, 파리, 런던까지 이어집니다. 당장 열차운행이야 안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습니다. 8월 말에 남북정상회담을 한다고 하니 혹시 좋은 결과가 있을 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다소 낮선 용어가 보입니다. 出境이라......  出京도 아니고,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지방의 경계를 넘어 다름 지방으로 감'  분명히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은 분명한데... 남북간의 이상한 관계(?) 감안해서 맞는 단어를 찾으려는 고민이 엿 보입니다.

 

 

출경절차는 의외로 출국절차와 동일합니다.  발급해준 신분증과 짐 검사를 하고 드디어 북쪽으로 들어갑니다. 긴장반, 흥분반의 일정이 이어집니다. 사진을 못 찍게 하니 남은 것은 머리 속에 있는 풍경뿐입니다.

금강산의 막내라고 하는 구선봉 앞에 북쪽 출입사무소가 있습니다. 분위기는 긴장되는데 절차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간단한 출입 절차를 마치고 북쪽으로 들어섭니다. 멀리 집들이 보이고 일하는 농부들도 보입니다. 너무 멀어 손을 흔들어 봐야 보이지도 않습니다. 집들은 매우 낡아 보입니다. 새로 지었다는 집들도 낡아 보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겉면을 치장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금강산 온정리에 도착합니다. 널직한 공간이 설악산 소공원을 연상시킵니다만 설악산 소공원보다 더욱 넓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 화강암 봉우리들이 보입니다.

 



온정리 한 가운데 있는 매바위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일정이 바쁩니다.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합니다. 한시간 반 정도 하는데.... 할 말을 잃습니다. TV에서 보던 것하고 또 다릅니다. 손에 땀을 쥐며, 그 기술에 혀를 내둘릅니다. '태양의 써커스 퀴담'은 어린아이 장납입니다. 그냥 기술만 좋은 것이 아니고 藝라는 말을 쓰듯이 미적 부분도 많이 신경쓴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세계대회에서 입상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안 보신 분들은 기회가 있을때 꼭 보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통일교육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금강산 온천으로 향합니다. 옛부터 온천이 나는 곳에 溫자를 씁니다. 백암온천도 그렇고 금강산 온천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백암 온천을 제일 좋아합니다. 우리 나라 어디가도 그만한 온천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금강산을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결론은 매우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거의 백암온천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제 입장에서 이 정도면 아마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네요. 야외온천에서 금강산 연봉들을 바라보는 경치도 매우 훌륭하구요.

온천을 마치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니 오후 9시 넘습니다. 다들 조금씩 피곤해 합니다만 행사는 이제부터 진짜겠지요 ^-^ 호텔포장마차에서 백두산 들쭉술을 먹으며 얘기 꽃을 피웁니다. 호텔에 왠 포장마차냐구요. 이름이 포장마차입니다. 야외 바 정도 됩니다. 도와주는 북쪽 접대원동무(접대부 아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즐겁게 얘기합니다. 매우 참해 보이는 북� 접대원 김영순,리성실 동무와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찍어가며 즐겁게 마시고 즐깁니다. 술값은 싼편은 아니구요. 40%짜리 백두산 들쭉술을 25$받습니다. 북한 술이라고 생각하면 비싼 것이고, 호텔이라고 보면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늦밤까지 재미 있는 술자리는 이어집니다.  

신나는 술자리는 언제나 흔적을 남깁니다. 저와 룸메이트는 다음날 집합시간에 지각을 합니다. 

8월 7일 아침 버스를 타고 내금강 만폭동으로 향합니다. 내금강관광은 2007.6월1일부터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저야 금강산이 처음이지만 외금강 얘기만 들었기에 내금강은 무척 궁급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많은 북한 마을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멀리서만 볼 수 있습니다. 무려 두시간을 운행해서 만폭동 표훈사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비가 내립니다.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날씨인데, 이번 여행은 날씨가 협조해 주지 않는 것 같네요. 표훈사는 6세기 백제시절에 창건된 절로서, 금강산의 4대 사찰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절입니다.  불사를 하지 않아 절집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관리인인지 중인지 헤깔리는 주지(그래서 이름붙이기를 아르바이트 중) 가 손님을 맞이합니다. 단정하게 깍은 머리에 시원한 여름용 샌달을 신고 있습니다. 같이 사진도 잘 찍어줍니다.

 



반야보전 오른쪽으로 이제 만포동 계곡입니다. 널찍한 계곡에 수만은 폭포와 소들이 있습니다. 계곡이 넓어 커다란 등산로가 계곡을 따라 올라갑니다. 느낌을 얘기하자면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합친 것 쯤일까요. 흑룡담,벽파담,비파담,진주담 등등 수많은 폭포와 소들이 즐비합니다. 들어가서 푹 담그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들어가면 벌금이 얼마라고 미리부터 엄포를 놓습니다. 그래도 저는 등산용 샌달은 싣은 관계로 다리는 원 없이 빠져봅니다. 다른 분들도 양발벗고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데 못하니. 제가 부러운 눈치입니다. 이것이 진주담입니다. 폭포는 진구폭포구요. 진주알이 굴러떨어지는 것 같아서 진주 폭포하고 하네요 .

 

 

그리고 열심히 올라서서 묘길상입니다. 묘길상은 고려시대 초기의 마애불입니다. 묘길상은 흔히 문수보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데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흥준씨는 아미타불로 생각된다고 주장합니다. 머리의 육계와 손모양이 보살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등반은 여기서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이길이 비로봉으로 가는 최단코스이고 묘길상에서 한시간 반이면 비로봉이라고 합니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인데 못가게 합니다. 옆에 있는 안내원에게 물으니, 먼저 안내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뭐냐고 하니 산악 구조대원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못올라가는냐고 하니 남측인사에게는 아직 개방되지 않았다고합니다. 아!! 아쉬웠습니다. 비로봉 정상에 한 번 서 보고 싶은 마음이야 여기 온 모든 사람의 마음이겟지요. 그러니 저 같은 산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구조 대원에게 이것 저것 물어봅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북한 구조대원인데, 이름만 대면 공통으로 알만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김모 대장, 황모 부대장 정모대원 등등. 아니 북한에서까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있다니, 저를 아는 사람들의 놀라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금강산 구조대원은 서울시 산악연맹 구조대가 그 창설을 도왔습니다.  벌써 3년째 되었고, 서울시 구조대원들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참 세상 좁지요. 그 북한 구조대원은 최모라는 친구인데 이번 9월에 서울시 연맹구조대가 들어올 때 같이 오라고 합니다. 직장 때문에 못 온다고 하자, 왜 산에나 다니지 선생은 하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북측에서 금강산 산악 구조대원은 상당히 좋은 직업에 속한다고 합니다. 영어에도 모두 능통하다고 하네요. 그러니 대우도 좋겠지요. 서울시 산악연맹 구조대는 월급도 없는 자원봉사로 몸으로 때우는데 말이죠.

내려오다보니 마하연 터가 보입니다. 마하연은 일종의 승려학교입니다. 마하가 대승을 얘기한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북측 안내원설명이 얼마전에 남측의 90을 넘긴 한 숭려분이 오셔서 자신이 여기서 수학했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더란 얘기를 해줍니다. 60년만에 자신의 모교(?) 를 찾은 승려라..... 

 



몇 년전 고은시인이 장안사 부도에서 자신의 할아버지 스승인 만공선사의 글귀를 찾아내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는데 하물며 자신이 공부한 수학처를 60년만에 찾은 고승은 심정이란...  그리고 폐허만 남은 빈터를 바라보는 그 마음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내려오다 보니 보덕암이 보입니다. 보덕암은 9m의 철기둥 하나에 의지하여 절벽에 걸려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은 암자입니다.  




보덕암( 정확히는 보덕굴이라고 해야 합니다) 은  고려시대 회정이라는 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회정이 경전을 읽다 잠이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아리따운 아가씨, 그 이름 보덕각시를 만나게된 회정은 그 처자의 미모에 반해 자신의 신분도 잊은채 청혼을 하게 됩니다. 그 여인은 거절하고 만폭동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꿈에서 깨어난 회정은 그 여인을 만나러 무작정 만폭동으로 행했고, 금강문을 지나 금강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선녀를 발견합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무작정 쫏아가자, 그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가던 회정이 한구비를 돌자 그 여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어디선가 날아온 파랑새 한마리가 법기봉 중턱에 있는 굴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회정이 어렵게 그 굴에 들어가자, 굴안에는 작은 부처와 불경만 있었습니다. 그제야 회정은 관세음보살이 이곳까지 자기를 인도해왔다고 생각하여 그곳에 암자를 짓고 열심히 수도하였다고 합니다.     

 



보덕굴 바로 위에서 만폭동을 배경으로 찍었습니다. 어떻게 보덕각시를 좇아온 회정같습니까? 배경이나 풍광사진은 찍어도 제 사진은 좀처럼 찍지 않아서 이번 금강산 기행에서도 제가 나온 사진은 달랑 3장 입니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식사 후 장안사 터를 마지막으로 내금강 관람을 마칩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흥준 선생이 한 얘기가 기억납니다. '모든 유적 중 가장 나중에 찾는 것이 폐사지이고 가장 의미 있는 답사처이다'

 

그런데 이 널직한 장안사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역시 아직까지 의미 있는 답사여행을 하기에 공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금강산, 특히 내금강에는 많은 글씨들이 있습니다. 봉래 양사언이 새긴 글씨부터 수 많은 이름없는 시인 묵객 혹은 아무나(?)가 새겨놓은 글씨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1972년부터 몇년간 집중적으로 새겨진 북측의 체제 찬양문구들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글씨는 후대에도 문화재가 되며 많은 사람이 감동받는 글씨가 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겠지요.

 



장안사 터를 끝으로 내금강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비가 많이 오기 시작합니다. 묘길상까지 오르는 길에 비가 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비포장도로를 굽이굽이 두시간을 옵니다. 다리가 없는 곳도 있어 현대아산의 굴삭기들이 동원되어 다리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현대는 금강산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상당부분을 금강산 관광 기반시설 구축에 쏟아 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오늘도 온천을 합니다. 그리고 어제 만난 북측 접대원을 봐야 한다는 롬메트의 강력한 건의를 열열히^^  받아들여 포장마치로 갑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천으로 포장마차를 열지 않습니다. 이런....  다시 물어보니 호텔안의 조선 식당에서 운영한다고 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갑니다만 우리의 접대원(?) 김영순,리성실 동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비번이라네요. 애구 애구.... 

그래도 금강산의 밤은 깊어갑니다. 1차,2차.... 여러분이 어울리다 보니 늘 화재가 새롭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버스 시간 다시 지각입니다. 아!!!!!!

 8월 8일 오늘은 두 코스입니다. 만물상코스와 해금강 삼일포로 나누어서 다니게 됩니다. 시간상 두 군데를 갈 수 없습니다. 저는 물론 만물상이었지요. 그런데 어제 술자리에서 그만 저의 롬메이트의 꾐에 넘어가 바다로 향하게 됩니다. 몰론 아침부터 퍼붇는 비를 보며 산에 가도 아무것도 못보겠구나 생각도 했구요. 산이나 바다 색깔이 이쁘려면 하늘이 예뻐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비만 내리니... 그래도 해금강은 해금강입니다.

 



해금강 구경에 정신이 없는 사이 누군가 아는 사람이 보입니다. 김모의원, 저의 친한 선배로 현재 광진을구 국회의원입니다. 바빠서 서울에서도 못 보는 데 금강산에 와서 보다니.... 대학생 국토 대장정인가의 단장이라고 하네요. 하여간 세상 좁습니다. 나쁜 짓하고 어떻게 사나 몰겠네요. 바로 요기서 만났습니다.

 



 해금강을 뒤로하고 이제는 삼일포입니다. 삼일포는 신라 화랑이 하루만 놀다 가려고 했는데 경치가 너무 좋아 삼일을 놀고 갔다고 해서 삼일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잔잔한 호수가 해금강과는 다른 경치를 보여 줍니다.  봉래대에서 바라보는 정경입니다.

 



  이 봉래대 아래에 봉래 양사언이 기거했다는 봉래굴과 벽에 새긴 글이 있다고 하는데, 못가게 합니다,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바로 아래 보이는 벽을 돌아서가 봉래굴입니다.

 

   



삼일포 구경이 마치고 내래오는 길에 북측에서 새긴 노래 가사가 보입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가시입니다. 노래명 '적기가' 대학  때 재미 삼아 가끔 불러 보았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원곡(?)을 보니 대학 때 따라 부르던 것과 가사가 조금 다릅니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_^) 조금이라도 아는 가사를 보니 반가습니다.

 



삼일포를 마지막으로 관광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숙소로 돌아와서 간단한 식사, 쇼핑을 합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남으로 출발, 북측 출입사무소에서 중간에 사진촬영을 했다고 약간 실갱이를 한 것 빼고는 이후 별탈 없이 마무리 됩니다.

약간의 긴장감과 설레임으로 시작된 이번 금강산 연수,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비로봉을 못가서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낭지고 한 열흘 쯤 헤매다보면 어느새 금강산과 호흡할 수 있는데....  언제가는 가야겠지요.

두번째로 과연 금강산은 명불허전입니다. 7월 말이 중국황산에 다녀왔는데 황산에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황산의 서해 대협곡정도만 금강산에 비교되고 나머지는 금강산을 못 따라옵니다. 다만 좀 더 자유롭게 다녔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세번째로 피상적으로 보이는 모습입니다만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입니다. 참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집 밖에 외장을 하지 않으니 집 자체가 초래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좁지 않은 땅은 농사를 짓고 있으나 허리춤밖에 자리지 않은 옥수수대가 북측의 농사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네째로 북한 구조대원과 나눈 몇 가지 이야기가 아마도 내가 들은 북측 사람의 가장 솔직한 얘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별 얘기도 없었지만요.  다음에는 조금 더 북측 사람과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이상 제가 금강산연수를 하며 방문하고 느낀 몇 가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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