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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깜장소 차마고도의 마방이 되다 5 - 매리설산

2009-12-31

 

샹그릴라를 떠나 윈난성 끝을 향합니다. 과연 티벳으로 들어설 수 있을 런지.. 새로운 기사 피주와 칠링은 아무 문제없다고 자신 합니다. 더친 페일라이스(飛來寺)에서 퍼밋을 구할수 있다고 합니다.  구하지 못하면 그냥 들어가도 된다고 하네요. 우리가 중국사람같이 생겨^^ 말만 안하고 있으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다나요. 좀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중국이니 또 모르겠습니다.

 

                                                                              트레블게릴라에서 재인용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더친에 도착 후 알바본 바, 퍼밋없이는 티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티벳 퍼밋은 쿤밍과 샹그릴라에서 발급 받을 수 있으나 신청 후 발급에 일주일을 걸립니다. 결국 소금마을 옌징을 코앞에 앞두고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행를 모두 망연자실합니다........ --; 그래도 갈 수 있는 곳 까지는 가야겠지요

  

드디어 TV에서나 보던 차마고도 길들이 나타납니다. 도대체 저런곳을 어떻게 걸어다녔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보이는 강은 진사강(金沙江) 줄기로 양쯔강의 상류입니다. 조그맣게 보이지만 우기라서 수량도 많고 물살로 무척 거셉니다.

  

금사강을 횡단하는 허롱교가 나타납니다. 강은 차마고도를 운행하는 마방들에게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좁고 가파른 길, 무너지고 눈이 쌓여 가기 힘든 길도 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몇개 더 넘어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되도록 강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혀 강을 건너지 않고 갈 수는 없는 법, 결국 몇 번은 목숨을 걸고 강의 건너야 합니다. 한가닥 외줄에 의지해 강을 건너기도 하지만, 이 외줄다리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양가죽에 바람을 넣어 충분히 부풀린 다음, 이것을 몸에 묶어서 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외줄다리가 설치된 것은 길게 잡아야 150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전에 강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이 것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상상만해도 아찔한 광경입니다.     

  

허롱교위에서 보니 차마고도길이라는 안내판도 보이는 군요

  

칠링이군요. 20대 중반으로 나이는 젊은데 장가를 가서 아이가 다 컷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의 평균 결혼연령이 우리보다 휠씬 빠릅니다. 한국인 평균 결혼연령이 남자 31.2세 여자 28.3세라고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생물학적으로 가장 왕성한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입니다. 즉 생물학적으로는 이 나이가 결혼 적령기가 되겠습니다. 그럼 왜 이리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있을까요. 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한 원인입니다. 경제적 독립 연령이 자꾸만 늦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자체를 기피하는 경향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도 아이 낳기를 꺼립니다. 작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1.19명으로 전 세계 최저입니다. 일부에서는 사교육비같은 경제적 문제를 원인으로 거론합니다. 그러나 사교육비 이전에도 탁아,육아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거의 전무합니다. 일하는 여성이 많아진 지금도 출산은 직장에서 불이익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런 개별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엄한 처벌없이 출산율이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기사 피주군요.

번즈란(奔子樓)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습니다. 번즈란은 티벳어로 '아름다운 강뚝'이라는 뜻의 진사강(金沙江)가의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번즈란은 차마고도상의 중요한 거점으로 샹그릴라에서 라싸로 행하는 유일한 길에 있습니다. 마방들에게 긴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는 쉼터같은 역할을 해주는 곳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번즈란은 샹그릴라에서 더친으로 향하는 길목의 가장 낮은 마을입니다.

오다보니 자전거로 이 길을 따라 가는 라이더들이 간간히 눈에 띕니다. 자전거를 취미로 가지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부터 죽음의 코스가 시작됩니다.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백마설산까지 오르막 길이는 50km. 상상이 되십니까. 자전거 50km의 업힐(라이더들이 부르는 고개 오르기) 그 힘들다는 미시령도 3.4km 인데, 50km를 올라간다는 것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차마고도 라이딩의 어려움이 업힐에만 있는 것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 포장된 구간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먼지입니다. 특히 트럭들이 많이 다녀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도 묵묵히 이 길을 가는 라이더들이 가끔씩 보입니다. 이들의 굳건한 의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가다보니 진사강(金沙江)제일만이 보입니다. 윈난성 관광사진에 반드시 등장하는 곳이지요.

  

장족부자가 보입니요. 그럼 우리가 흔히 티벳인이라 부르는 장족에 대해 알아볼까요?

장족은 주로 청장고원(青藏高原), 사천성(四川省), 청해성(青海省), 감숙성(甘肃省), 운남성(雲南省) 등에 살고 있으며, 인구는 약 541만명정도입니다. 티베트인 즉, 장족(藏族)은 자신들을 “뽀파(博巴)”라고 부릅니다. 티베트인을 장족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본래 "장(藏)"이 장족어인 “후장(后藏)”으로부터 나왔고, 야루장부강이 경유하는 곳이라는 뜻이라 연유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장족은 농업과 목축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그들이 사는 지역은 산림이 무성한 까닭에 진귀한 동물이나 귀한 약재가 많습니다. 장족은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음식은 담백하고, 대부분 조미료와 양념을 넣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들은 짠바(糌粑)를 주식으로 하고 쑤요(酥油) 즉, 양 젖을 졸여 기름을 짜낸 차를 즐겨 마십니다

(송행근의 중국지식사전)

  

드디어 백마설산고개에 올라섭니다. 50km를 올라온 라이더들이 보입니다. 네덜란드 친구들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출발을 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내리막이 30km 정도 이어지는 그 거리 많큼은 행복할 것입니다^^

  

매리설산을 바라보며 롱다를 걸어봅니다. 롱다는 깃대에 매단 깃발을 가리키는데 티벳어로 바람의 말 혹은 달리는 말을 뜻합니다.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이 달리는 말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전이 씌여진깃발 롱다는 신에게 보내는 경외와 소망이라고 할까요. 저희들의 소망도 같이 기원해 봅니다. 

  

원정대 깃발도 걸어봅니다.

  

운무에 싸인 백마설산이군요.백마설산은 옥룡설산,합파설산.매리설산과 더불어 차마고도 4대 설산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명색이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 이런 곳을 트레킹도 못하고 지나가게 되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해발4292m 를 가리키고 있군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안 되는 높이 입니다만 이 곳에서는 동네 뒤산입니다.

  

티벳으로 가는 유일한 길 214번 국도 1959라는 숫자는 라싸가지의 거리, 1959km 남았다는 것입니다. 조그만한 땅떵어리에서 살다보니 2000km라는 거리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부러운 넘들  

  

우리 일행이 탄차는 일제 파제로 모델로 현대 캘로퍼와 같은 차입니다. 이전에 갶로퍼를 보며 저 고도계.수평계를 어디다 쓰나 생각했습니다만 여기와서 보니 용도를 알겠습니다. 고도계가 높이 4400m를 나타내고 있군요

  


드디어 매리설산이 보이는 페일라이스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는 명주주점으로 매리설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매리설산을 찍으려는 사진사들로 가장 붑비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일행이 여기 머물 동안 매리설산은 한번도 그 속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매리설산은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산으로 아직까지 한번도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산입니다. 1991년 중국 일본 합동 등반대가 매리설산을 등정하기 위해 등반대를 꾸립니다. 그러나 등반대 17명 전원이 눈사태로 실종,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중국정부는 이 사건이후 매리설산의 등반을 전면 금지시킵니다. 지금도 티벳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산신을 자극해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더 매리설산을 신성하게 여기게 됩니다.

 



다음날 불산 차마고도 길을 답사하고 외줄타기 체험을 할 차례입니다. 이미 티벳을 들어가기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오늘의 탐사와 체험이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가 될 것입니다.

 

외줄타기 체험과 불산차마고도 트레킹을 안내할 현지 안내인 쓰나입니다. 티벳안내인으로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는 단골손님입니다^^ 원래 직업은 수의사인데 아무래도 안내인 벌이가 더 쏠쏠한 모양입니다.

 



외줄타기 장소에 도착합니다. 엄청난 급류가 흐르는 란창강(메콩강상류)에 달랑 걸려있는 외줄입니다. 강폭은 대략 200m 정도. 이런 외줄다리는 가는 줄과 오는 줄 반드시 두개가 나란히 걸리게 됩니다. 약간의 경사를 주어 자연스럽게 타고 내려가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 일행의 외줄타기 교관인 바이마리쓰가 건너오고 있군요.

  

바이마리쓰는 서안에서 대학을 다니는 장족처녀입니다. 산골의 장족 처녀를 생각했는데^^ 서안에 사업을 벌이고 있는 막강파워미키님이 유난히 반가워합니다. 손에 들고 있는 도강 장치^^ 저게 다냐구요. 그렇습니다 저게 다 입니다. 도르래 하나에 한토막 줄.

  

이제 작전을 짜고 있군요. 뭐 작전짜봐야 별것 있습니까. 그냥 들이대는 수 밖에요^^

  

현지인 쓰나가 건너봅니다

  

막강파워미키님이 일행 중 일착으로 건너봅니다. 도르래 한개, 줄 한토막, 그리고 유일한 브래이크 장치인 박스종이 이 세 가지로 순식간에 란창강을 건넙니다.  

  

바이마리쓰와 사랑방손님이 듀엣으로 건너봅니다.

  

메리설산 명주주점에서 만난 근재군도 한번 건너보구요

  

다음 차례는 스테파노님입니다

  

깜장소도 건너는 군요.  만약에 여기서 떨어져 물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아마도 수천km를 떠 내려가 메콩강의 베트남어부의 그물에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사실 암벽등반을 하는 제 입장에서 이런 류의 체험이 처음은 아닙니다. 암벽등반 중에는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해 외줄을 타고 건너는 티롤리안 브리지라는 등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한 안전장비를 갖추고 합니다. 지금처럼 달랑 도르레 한개 줄 한토막에 제 자신을 맡겨 보기는 처음입니다 ^^

  

드디어 모두 체험완료. 너무도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일행 모두는 고마움에 바이마리쓰에게 학용품을 전달합니다. 대학생에게 무슨 학용품이냐구요. 그러게요ㅎㅎ 어린 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현지식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습니다. 처음에는 못 먹는 중국음식도 많았는데, 점좀 못 먹는 음식이 없습니다. 역했던 냄새도 향기로와지더니 샹차이도 그냥 씹어 먹습니다. 이마도 깜장소는 전생에 중국넘이 었나봅니다.

  

 

이제 마방들이 건너던 다리를 건너 불산차마고도로 접어듭니다. 이곳은 절벽의 중간을 파 길을 만든 곳입니다

  

저런 곳에 어떻게 길을 만들었을까요. 무슨 중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닐텐데.

  

위험스런 차마고도 길을 걸어가는 저희 일행이 보이는 군요. 길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란창강 물줄기는 엄청난 속도로 흘러갑니다.

  

이 길의 너비는 대략 1m. 중간에 길이 무너진 곳은 이렇게 나무같은 것으로 복구를 해놓습니다.

  

 순전히 손으로만 어떻게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요. 자세히 살펴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는 90도에 가까운 절벽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6,70도 정도 되는 경사입니다. 이런 경사로를 갂아내 길을 냅니다.  

  

만든 길이 무너지거나 산사태가 나면 길은 위쪽으로 올라갑니다. 다른 길을 만드는 것이지요.

  

바위를 ㄷ 자로 파서 길을 만듭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가까이서 보면 바위가 결이 있고 매우 약한 재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한 손망치로도 쉽게 부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차마고도길은 하나하나 사람손으로 깨고 파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바위가 약하다고는 하나 이런 길을 사람손으로 만들기까지 알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 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불산차마고도 트레킹을 마친 저희 일행이 현지가이드 쓰나집을 방문합니다. 쓰나는 올해 38세로 17,13새의 두딸이 있으며 96세의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깜장소보다 어립니다^^ 액면은 저 보다 한참 위로 봤는데 말이죠ㅎㅎ


 티벳인들에게 목숨이라는 수유차도 대접받아 봅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차마고도 원정대의 탐사는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티벳땅을 불과 몇km 앞에 두고 결국 돌아서야 했던 일행, 모두 진한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쉽게 올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더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여행의 의미가 모든 것을 다 얻는 데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지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며 보아왔던 풍경들을 머리 속에 간직하는 것 자체도 여행이 줄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일단 차마고도 여행기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못다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부족한 여행기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