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5
그러니까 한달 전 늘 여행을 함께 다니는 음악티가 중여동 진황도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가족들과 3박4일 짧은 여행, 어떠냐는 것이지요. 다른 곳 여행을 기획하고 있던 깜장소, 일단 고민해 보겠다고 합니다. 여행 단짝인 음악티가 간다는데.... 더군다나 시작부터 배로 가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결국 가기로 결정, 카페지기 정규호실장에게 덜컥^^ 신청을 합니다. 그리고 12월 24일 다른 친구녀석 집에 놀러가 음악티를 만납니다.
음악티 : 야! 나 진황도 못 간다
깜장소 : 뭐 야 임마! 그런 게 어디 있어?
음악티 : 어떻게 하냐 4일에 신년 하례식이라고 나오라고 하는데.....
깜장소 : 야 이씨..... 미리 얘기를 하지 .....
음악티 : 미안하다 잘 다녀와라 --;
깜장소 : 우씨.....

2010년 1월1일 장모님까지 모시고 집을 출발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강서세무서 앞에서 1600번 삼화고속을 타면 연안부두로 간다네요. 강서세무서 앞 도착 버스 안내판을 보니 1600번이 안 보입니다. '제대로 찾아 본거야?' 마눌이 눈을 흘깁니다. 이런... 이상하다. 1400번 삼화고속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1600번이 있답니다. 어떤 넘이 안내 스티커를 찟어버린 것 입니다. 조금 있다가 1600번 버스가 옵니다. 뭔가 시작부터 이상합니다. 느낌도 안 좋구요^^

그래도 작은 넘은 신이 나 있습니다. 큰 넘은 유럽부터 중국 여기저기 많히 가 보았습니다. 작은 넘은 작년에 광저우가 해외여행의 처음이구요. 두번째 간다니 무척 좋아합니다,

연안부두에 도착, 여객터미널로 향합니다.

도착해 보니 음악티 가족이 보입니다. 아니 이런..... 이것들이......--; 음악티와 정규호 실장이 깜장소를 놀리려고 못 간다고 한 것이지요. 한바탕 웃고서는 단짝인 음악티 가족과 즐겁게 재회합니다.

가운데 보이는 목발짚은 친구가 음악티입니다. 그런데 한참 배표를 받고 있는 사이, 당황하는 음악티 얼굴이 보입니다. 왜? 갑자기 못가게 되었다며 얼굴이 사색이 되는 음악티..... 갑자기 일이 생겼답니다. 어떻게 하나..... 결국 가족들만 보내기로 하는 음악티. 이런..............
우리식구 5명에 음악티 식구3명, 갑자기 여덟식구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어도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하나씩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긴 가야지요. 천황도 가는 배 욱금향호에 올라탑니다. 선실도 비교적 께끗합니다. 사실 이만한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6년 유럽에 갔을 때도 크로아티아에서 이탈리아까지 24시간동안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넌 적이 있지요. 그때의 환상적인 여행을 기억하는 큰 아이가 이번 여행에 제일 먼저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정박해 있는 배들도 보이고 날씨도 매우 좋습니다. 음악티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아주 쾌적하고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배를 타자마자 점심을 주네요. 반찬이 약간 짜기는 한데 맛은 좋습니다. 아이들 모두 맛나게 먹습니다.

이제 원근해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욱금향호는 1995년 취항한 12000t급의 컨테이너 운반 겸용의 배로 여객선치고는 작은 규모입니다. 사실 지금이나 근해를 벗어난 원거리 항해가 안전하게 가능해진 것이지요. 이전 그러니까 철 동력선이 만들어지기 전에 먼 바다를 나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일이 었습니다. 기껏 3,40m 범선으로, 그것도 날씨에 대한 예보도 없이.... 말 그대로 자살행위에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바다로 나갑니다. 위험이 크면 돌아오는 이익도 그만큼 크겠지요.
처음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바스코 다가마는 여러가지 스파이스(향신료)를 싣고 유럽으로 귀환합니다. 비록 가진 물건이 변변치 않아 인도에서 교역에 고전했지만, 싣고온 화물은 그에게 총 비용 600배의 이익을 선물합니다. 이것은 당시 유럽에서 높은 향신료 가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후추는 같은 무게의 금과 거래되었습니다. 육두구로 불리는 넛맥은 금보다도 휠씬 비싸서, 한 줌밖에 안 되는 500g에 소 7마리, 또는 여자 노예 3명과 교환되었습니다. 바스코다가마 이후 모두 다 목숨을 내 걸고 바다로 바다로 나갑니다. 콜럼부스와 마젤란의 항해도 정확히 스파이스 루트를 개척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됩니다. 누구는 도전정신, 탐험정신이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요^^

카나페를 만들어 대낮부터 한잔합니다. 카나페는 이동 중에 만들어 먹기 좋은 안주입니다. 아이들 간식으로도 적당하구요. 만드는 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봉지에 든 참치에 마요네즈를 넣고 비빕니다. 그리고 참크래커에 스팸을 얇게 설어 올립니다. 그 위에 비빈 참치를 얻고 크래커로 덮으면 끝. 맛도 아주 좋습니다. 한 번 만들어 보시지요. 카나페

집에서 어묵몪음과 김치복음도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어묵볶음은 음악티가 제일 좋아하는 안주인데....--;

석양이 집니다. 바다로 들어가는 일몰을 기대했지만 좀 아쉽습니다.

이제 식당에 모여 자기 소개 및 친교의 시간입니다. 이런 자리는 여기저기 오가며 다양한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재미있습니다. 쉽게 친해지기도 하구요. 그런데 여덟명의 가장^^으로 식구들 눈치가 보입니다. 음악티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입니다.

일행 중 여든으로 가장 연세가 많으신 황일수님이십니다. 이번 여행도 리턴변경을 하시고 혼자서 기차로 북경으로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신다고 합니다. 와 정말 대답하십니다.
저녁에 한잔을 걸치고 잠자리에 듭니다. 새벽부터 배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일어서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 있기도 힘듭니다. 갑판 위로 나가 보려하니 몰아치는 파도와 바람에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아침 식사시간이 되어도 진정되지를 않네요. 아이들 대부분 아침 먹은 것을 다 확인하고^^ 누워서 파도가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립니다. 어제는 혼자서 혼자서 키미테를 붙인 정실장을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군요ㅎㅎ

그렇게 힘들게 도착, 이제 산해관 가는 버스에 올라탑니다. 한 버스는 점심 안 먹고 바로, 다른 하나는 점심먹고 산해관으로... 마음이 급한 저희 일행 냉큼 점심 안 먹는 버스에 올라탑니다. 그런데 자리가 부족합니다. 다들 마음이 급하신 모양입니다. 자리가 부족하자 정실장 강제 교통정리에 나섭니다. 결국 깜장소 식구들, 미소충만님 식구까지 해서 12명 점심 먹고가는 버스로 강제 이동됩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결과는 점심먹은 버스의 판정승입니다. 아침도 배멀미로 부실, 점심도 안 먹고. 점심 안 먹은 버스는 다들 기절직전가지 내몰렸다는 후문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행복을 좌우했다고 하까요. 이곳 산해관이 그런 곳인 것 같습니다.

산해관의 바다쪽 성벽인 노룡두(老龍頭)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는 군요. 이 바닷가에서 만리장성의 수천km가 시작됩니다.


바다신을 모시는 해신당도 보입니다

진황도의 지명은 진시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원221년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 천하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는 이제 영원불멸의 삶을 위해 불노초를 찾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죽지만 않으면 됩니다^^ 228년 제나라 방사(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를 자처하는 서복에게 동남동녀 500명과 수 많은 금은 보화를 주고 갈석산 혹은 바다 속 삼신산에 있다는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 진황도에서 출발한 서복이 어디로 갔나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불로초가 있을 턱이 없으니 돌아올리는 만무하고, 크게 한탕 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기에도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서복은 실존인물로 추정됩니다. 서복은 봉이 김선달의 대선배쯤 되겠습니다^^.

산해관이군요 동쪽에서 시작되는 만리장성의 첫번재 관문입니다. 산해관은 대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세워졌다. 이곳 진황도 북쪽에는 연산(燕山)산맥의 줄기인 각산(角山)이 우뚝 서있고 남쪽에는 발해(渤海)가 있습니다. ‘산해’라는 이름은 각산과 발해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산해관이 중국에서 가장 큰 성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산해관이 천하제일관으로 쓰는 것은 청나라의 강희제가 이곳을 지나며 “두 서울을 잠그는데 더할 나위 없는 곳, 만리장성의 첫번째 관문이라”는 시구를 남기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이곳 산해관과 인연이 많은 인물로는 단연코 오삼계입니다. 오삼계는 명나라 산해관 방어를 책임진 마지막 장수입니다. 당시 만주 서부까지 점령하고 있던 명나라는 신흥세력인 청에 연전연패를 하게됩니다. 결국 마지막보루인 이곳 산해관까지 밀립니다. 진시황제 때부터 시작되어 명대에 가장 많이 축조 되었다는 만리장성. 그러나 한번도 외적을 제대로 막은 적이 없다던 만리장성은 과연 명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청나라 섭정 도르곤과 오삼계가 날카롭게 대치하던 그때. 명나라는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군에 의해 멸망해버립니다. 청나라와 이자성으로부터 모두 회유를 받은 오삼계. 오삼계는 이자성에 충성을 위해 북경을 향합니다. 오삼계의 가족을 인질로 오삼계를 회유하던 이자성은 오삼계의 아버지를 죽여버립니다. 북경으로 가는 도중 이 소식을 들은 오삼계, 그러나 북경으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애첩 진원원을 차지해 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오삼계는 발걸음을 되 돌립니다. 그리고 청 도르곤에게 이자성을 칠 병력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사실상 청나라에 항복한 것이지요. 오삼계의 애첩 진원원의 미모를 알 수는 없으나, 천하의 물줄기를 바꾸었으니 가히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여자였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산해관은 선택의 도시이고ㅋㅋ, 만리장성은 한번도 외적을 제대로 막은 적이 없는 프랑스 마지노선과 같은 운명인가 봅니다.

우리 교포 가이드 박철씨가 오삼계와 그의 애첩 진원원에 대해 열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조선족이라 부르는 중국동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은 이런 호칭을 그리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동포들과 비교해도 별로 바람직한 호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들은 교포라고 불리기 원합니다. 그러다면 마땅히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교포'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딱 하루밤을 묶을 호텔입니다.

다음날 폭설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기온도 급강하 영하 20도에 육박합니다. 중국 고위층의 여름 별장촌이라는 북대하를 구경하고 귀국 길에 오르게 됩니다.

깜장소가 나온 사진이군요. 여행기간 제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부탁을 해 찍었습니다. 마눌과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군요. 그런데 좀 어둡군요. 잘 좀 찍어라 정실장^^

진황도 해관으로 행합니다. 이제 귀국할 시간. 그러나 결국 몇시간을 버틴 끝에 배가 뜨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시내에 부는 강풍을 감안한다면 바다 바람이 어떨런지는 상상도 안 갑니다. 아마 배가 뜬다고 해도 제가 타기 꺼려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귀국하는 유일한 교통편이 사라졌습니다. 배는 내일도 아니고 모래나 출발한다고 합니다. 결국 버스를 타고 북경으로 향합니다. 북경에서 비행기를 알아보는 것이 유일한 귀국방법일 것이라고 정실장이 말합니다. 일행 모두 버스를 타고 북경을 향합니다. 과연 도착할 수 있을까요......... 40년만의 대폭설, 진황도에서 북경까지 280km의 눈 내리는 고속도로, 제설 차량 한대도 없는 사고차량 투성이의 고속도로.................. 이 악조건을 뚫고 기적적으로 6시간 만에 북경에 도착합니다.

북경 왕징에 여장을 풉니다. 그러나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비행기편을 알아봐야하는 정실장,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행기 값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일행들..... 그렇게 전쟁같은 밤이 흘러갑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습니다. 추워는 여전하지만, 오전에 잠깐 짬을 내 새둥지라 불리는 올림픽 경기장도 가봅니다. 전혀 일정에도 없던 북경이니 보너스라고 얘기하면서 낄낄댑니다^^

왕푸징에 들려 사진도 찍고 간단하나마 쇼핑도 해봅니다. 이만하면 북경 다 가봤습니다ㅋㅋ 일행 중 몇 명을 제외하고 북경은 처음입니다. 이제 누구를 만나도 '너 북경 가봤어?'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신만고끝에 비행기표를 구하고 공항으로 향합니다. 어 그런데 한국이 난리났습니다. 100년만에 폭설이랍니다. 40년도 아니구요^^ 북경에서 비행기가 출발을 못합니다. 12시10분에 출발해야 하는 아시아나 OZ334 편이 13시 25분에도 그대로 있습니다. 오늘 중 집에 갈 수는 있을까요? 안타깝게 마음 졸이던 일행의 심정을 전달되었는지 탑승신호가 떨어집니다. 결국 비행기는 5시에 한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마음 졸이던 순간을 넘어 이제 귀국입니다.
결과적으로 짧은 여행기간 눈과 추위만 따라다닌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교통편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애를 태웠습니까? 결국 사서 고생한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행에 고생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이 추위와 고생은 또 다른 기억으로 남으며 재미있는 여행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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