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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프리카 남부 여행 - 2. 탄자니아 잔지바르

잔지바르로 향한다. 인도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인도양의 낙원이라고 찬양해 마지않는 섬, 바로 잔지바르다.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연방공화국의 한축을 이루는 섬으로 페르시아어로 '검은 해안'이라는 이라는 뜻이다. 잔지바르를 아프리카의 흑진주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잔지바르는 주요 섬인 웅구자섬과 펨바섬을 비롯해 2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2,654이며 인구는 180만 명, 90%의 주민이 무슬림이다. 2,000 년간 잔지바르는 아랍-무슬림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1828 - 1861년 오만제국의 수도였으며, 1861년부터 1964년까지 오만제국에서 분리된 잔지바르왕국의 수도였다. 그리고 1964년 탕가니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탄자니아 공화국으로 합병한다.  

잔지바르 주요섬인 웅구자섬과 펨바섬

잔비바르는 멋진 풍광만큼이나 사연도 많은 섬이다. 리빙스턴, 스탠리 같은 탐험가들은 아프리카 내륙탐험에 앞서 휴식과 준비의 장소로 잔지바르를 활용했다. 굴곡 많은 섬의 역사는 곳곳에 많은 유물과 유적을 남겼으며 주도인 응구자섬은 건축 자재가 주로 돌인 관계로 Stone Town (돌섬)이라고 불린다. 2000년에는 스톤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스톤타운은 아랍풍의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뒷골목들이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각종 향신료가 코끝을 자극한다. 무슬림의 도시는 검은색 아바야를 입은 잔지바르 여성과, 하얀색 칸주를 걸친 남성이 스쳐가면서 보여주는 흑백의 조화로 신비감을 더 한다. 

 

다르에스살람에서 36km, 쌍둥이 쾌속선으로 1시간 조금 더 걸린다. 다르에스살람을 떠난 배가 망망대해로 나갈 즈음 왼쪽으로 작은 항구도시가 보인다. 다르에스살람으로 독일 총독부가 이전하기 전 식민지 수도 역할을 하던 바가모요이다. '내 마음을 놓고 떠난다' 는 뜻을 가진 바가모요는 이름 그대로 슬픈 역사를 간직한 항구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붙잡힌 노예들이 바가모요에서 배에 태워진 뒤, 잔지바르 노예시장으로 끌려가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몸은 끌려가면서 마음만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아프리카에 남고 싶었던 애절한 외침이 지명으로 남았다... 

검은 해안이라는 뜻과 달리 하얀모래 해변이 여행자들을 맞는다

쾌속선이 잔비바르에 도착한다. 부두에 내려 출입국사무소에서 입국 절차를 따로 밟아야 한다. 별도의 비자는 필요없지만 여권은 필요하다. 1964년 본토 탕가니아 공화국과 합치면서 탄자니아가 되었으나 여전히 독립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비자는 없지만 여권을 검사하고, 주권은 없지만 독립적인 자치권을 행사하는 잔지바르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스톤타운 어디를 가도 탄자니아 대통령과 잔지바르 자치정부 지도자 사진을 나란히 걸어놓고 있다.     

창구 아일랜드. 일명 거북이 섬이다

가이드를 만나 호텔에 짐을 풀어 놓는다. 그리고 일정이 바쁘다는 가이드를 따라 일명 거북이섬이라 불리는 창구섬으로 출발한다. 창구섬에는 세이셀 제도가 원산인 알다브라 코끼리거북이 서식하는 보호구역이 있다. 

등껍질에 158살이라고 나이를 써놓았다.


알다브라 코끼리 거북은 200년 정도 산다고 알려졌는데 심지어 250년을 사는 것도 있다고 한다. 등껍질에 나이를 기록해 놓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장수 동물인 거북이는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몇 가지 설명을 내어놓고 있다. 

 

1. 세포 자연사 매커니즘 -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거북이들은 스트레스나 손상에 노출된 세포를 미리 파괴하는 '세포 자연사(프로그램된 세포 죽음)' 메커니즘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암세포나 노화된 세포가 축적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하여 장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 텔로미어 복구능력 -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짧아져 생물의 수명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이, 특히 알다브라 코끼리거북은 이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일부 종에서는 텔로미어를 복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3. 극도로 느린 신진대사율 - 거북은 냉혈동물(변온동물)이며, 특히 대형 육지거북인 알다브라 코끼리거북은 극도로 느린 신진대사율을 가지고 있다. 신진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는 세포 손상과 노화의 주요 원인이다. 느린 신진대사는 활성산소의 생성을 최소화하고, 낮은 체온 유지는 대사 속도를 늦춰 생체 시계를 느리게 돌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심장의 총 작동 횟수는 정해져 있으며 느리게 뛰는 동물이 오래 산다.

시간의 삼킨 거북 언니데 동물원 오드리 인용 편집

현지가이드 카미스

다스에스살람을 출발하기 전 한인교회 목사님께 가이드 카미스를 소개받았다. 카미스는 잔지바르대학교 졸업생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청년으로 한국어도 제법한다. 한인교회에 나와 한국어를 배웠으며, 잔지바르에서 한국어를 하는 몇 명 안 되는 가이드이다. 혹시 잔지바르 가실 때 가이드 필요한 분 계시면 소개해 드릴 수 있다^^  커미스 덕분에 잔지바르 여행은 아주 편안하고 즐거웠다.  

감옥을 개조해서 카페로 만들었다.

창구섬의 또 다름 이름은 프리즌 아일랜드. 노예무역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비밀리에 노예무역이 이루어졌다. 스톤타운에 노예를 가둘 수 없으니 몰래 노예를 가두어 줄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옥은 노예무역이 완전히 중단된 이후에는 황열병 환자를 겪리 시키는 시설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잔지바르 프레디머큐리 박물관

잔지바르에는 프레디 머큐리 박물관이 있다. 본명이 '파로크 불싸라'인 그는 인도계 아버지가 영국 공무원으로 식민지 잔지바르에 근무할 때 태어났다. 어린 시설을 잔지바르에서 보내고 아버지 근무가 끝나면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영국에서 밴드의 전설이 되었다. 뭐 프래디 머큐리의 음악적 성취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8$의 입장료를 받는다. 별로 볼 것은 없다.

잔지바르가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기는 하지만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으로 동성애자인 프레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히트를 치면서 프레디 머큐리 고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스톤타운에서는 그가 살던 집을 찾아서 서둘러 박물관을 만들었다. 

프레디 머큐리 초상

별로 관심없다는 병훈이 살살 달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나중에라도 프레디 머큐리 박물간에 대해서 누가 물어볼 것 아니야. 대답할 말은 있어야 한다고 살살 꼬셔서^^ 입장을 한다. 물론 결과는 예측한 대로 실망스럽다. 잔지바르에 머큐리의 열성 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의 자료나 유물을 전문적으로 수집한 것도 아니고.... 자료는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설명도 안 되어 있고, 규모도 무척 작다.  

무대복

SNS 상으로 볼것이 없고 입장료만 비싸다고 소문이 나서 더더욱 인기가 없다.

그래도 박물관에서 나오며 병훈에게 한마디 한다. '잔지바르에는 프레디머큐리 박물관에 들어가 본 넘하고 못 들어가 본 넘, 두 종류의 여행객이 있지^^'

잔지바르 야시장

해가 지고 해변가로 나온다. 잔지바르에서 유명한 명물이 하나 있다. 밤마다 포로다니 공원에서 열리는 해산물 야시장이다. 유명한 유적지는 못 가도 여행자로서 절대로 빠트려서는 안 되는 곳이다^^  문어, 오징어, 바닷가재 등 신선한 해산물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이런 해산물은 꼭 맛을 봐야 한다. 

잔지바르피자 - 가장 유명한 음식이다

또 잔지바르 야시장에 와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잔지바르 피자다. 호떡 비슷하게 만들어 팬에 굽는다. 재료나 만드는 방법을 보면 간단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다. 가격도 저렴하고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무슬림 국가지만 슈퍼에서 맥주도 판매한다. 이런 고마운 일이^^

2차로 간 테라스 바

야시장을 벗어나 근처 바로 자리를 옮긴다. 동네 아마추어 가수가 가끔씩 팝송을 부르며 분위기를 띄운다. 병훈과 이런 저런 얘기 속에 밤이 깊어간다. 병훈은 고등학교 후배로 조기 은퇴족이다. 올 초 은퇴하고 시간을 잘 관리해 가며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남들보다 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병훈에 박수를 보낸다^^

잔지바르 동쪽 카고마니 - 대부분의 항구는 방파제와 접안시설이 없다.

다음날 돌고래 투어를 하기 위해 잔지바르 동쪽에 있는 카고마니로 행한다. 돌고래가 자주 나타나며, 운이 좋으면 돌고래와 같이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 그런데 돌고래가 나랑 놀아줄까^^ 기대반 설렘반으로 잔지바르 전통배 바우선은 탑승한다. 바우선은 전통 범선인데 모터를 달아 빠르게 이동한다. 30분쯤 바다로 나갔을까.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앞서간 배가 돌고래를 목격하고 따라가고 있다. 

유영하는 돌고래 무리

앞선 배를 따라잡고 보니 돌고래들이 열을 지어 헤엄치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돌고래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종류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참돌고래과로 보인다. 이 지역에 서식하며 배나 사람에 익숙하듯 관광객들에게 자주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돌고래와 수영을 해보기로 하고 물에 뛰어든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돌고래와 같이 수영해보기로 했다. 가이드의 추천에 용기를 얻어 바다로 뛰어든다. 바다에 뛰어들어 머리를 들자 돌고래가 안 보인다. 두리번거리니 벌써 20 여 미터는 앞으로 갔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돌고래를 따라갈 수 있을까^^ 배에 다시 타느라 고생만 한다. 그렇게 돌고래를 따라다니며 30여 분을 넘게 추격전을 벌인다.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멀리 도망가지 않고 사람들과 숨바꼭질을 한다.

 

아마도 돌고래는 놀이를 하고 있나 보다. 돌고래는 지능이 높고 초음파로 소통하며 놀이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 - 50 마리가 무리를 이루며 큰 것은 1000kg까지 자란다. 돌고래는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다. 그러다 보니 중금속 오염이 가장 심한 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은 물고기부터 쌓이는 중금속이 돌고래에 가장 많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옛 노예 경매장 - 성공회 성당 건물로 변했다.

스톤타운에는 아픔과 슬픔이 서려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노예시장이다. 아랍 노예상인들은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잡아온 노예들을 이곳 잔지바르까지 실어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예시장을 열어 고 이윤의 노예장사를 했다.

 

성공회 성당으로 바뀐 노예경매장에 들어선다. 지금 신도들이 기도하는 곳이 노예무역상이 있던 곳이고, 신부의 설교단은 노예가 경매에 부쳐진 단상이다. 성당안에는 1m 정도 되는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다. 노에무역에 반대했던 리빙스턴의 심장이 묻힌 자리에서 자란 나무의 가지로 만든 십자가라고 한다.

1873년 잠비아의 치툼보 마을에서 리빙스턴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충성스러운 하인 추마, 수시가 썩지 않도록 리빙스턴의 심장과 내장을 모두 꺼내 큰 나무 아래 묻고 유해는 14일간 햇빛에 말려 미라처럼 만든 뒤 영국으로 보낸다. 추마는 어렸을 때 노예로 끌려가다가 리빙스턴 도움으로 풀려난 인물이다.  

노예들을 수용했던 지하 감방이 남아있는 건물

성당앞 건물에는 한 방에 노예 75명씩 수용했던 지하감방 2개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마음만은 남겨두고 가라' 라는 절규를 뒤로하고 끌려온 노예들을 상품화하는 데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노예들을 이틀 동안 먹이지도 재우지도 않고 매대로 끌어낸다. 그리고는 '채찍세례'로 노예의 몸값을 매겨서 팔아넘긴다. 채찍 한대에 쓰러지면 매매에서 제외되며, 10대 채찍에도 쓰러지지 않으면 고가로 팔리고, 20대 채찍에도 견디어 내면 10대 채찍의 두 배를 받는다. 매매에서 제외된 노예는 가차 없이 생매장을 당했다. 

지하 노예수용감방 - 이 좁은 공간에 75명을 수용했다.

지하감옥은 시멘트 바닥과 천장 사이가 1m도 안되는 좁은 공간으로, 여기에 노예 75명을 밀어 넣었다. 사람이 서기는커녕, 앉아있기도 불편한 정도의 공간이다. 따로 화장실이 없어. 방가운데 파놓은 구덩이에 그대로 똥오줌을 봐야 했다. 가축우리의 분뇨를 치우듯이 가끔 똥오줌을 치웠다고 한다. 벽에는 작은 바람구멍 두세 개 만이 뚫려 있다. 햇빛도 잘 안 드는 작은 구멍인 데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수용하다 보니 질식사하거나 각종 질병으로 죽어간 노예들이 부기지수였다. 처음 붙잡힌 노예 중 살아남은 자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굴비 엮듯이 쇠사슬로 노예들을 엮어서 가두었다.

당시 노예들의 목을 묶었던 쇠사슬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서로의 목을 쇠사슬로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한명이 드러눕거나 일어나면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모두 따라가야 했다.

어두운 지하수용소에 가느다란 빛이 한줄기 바람구멍으로 들어오자, 시멘트 바닥과 벽에 긁힌 자국과 푹 팬 흔적이 선명히 드러난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노예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할 퀸자국으로, 지하수용소 곳곳에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을 노예들의 모습으로 눈에 선하게 남아 있다..... 

스웨덴 조각가가 조각한 5명의 노예군상

지하 수용소에 있던 노예들은 지상 경매장으로 끌려나와 물건처럼 팔렸다. 1830 - 1873 년 사이 이곳 잔지바르에서 팔려간 노예의 수가 60만 명이 넘는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16세기부터 19세기 까지 성행했는데, 무려 6000만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끌려갔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아랍상인들에 의해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으로 끌려갔고, 서아프리카에서는 유럽상인들이 유럽과 서인도제도,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고갔다. 유럽과 미대륙은 노예의 희생을 딛고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아프리카는 급격한 인구감소와 농업쇠퇴, 문명발전의 장애를 겪어야 했다. 이 가혹한 노예무역은 1873년 6월6일이 되어서야 페지된다.  

잔지바르의 저녁노을

다크투어를 마치고 해변에 나와 앉는다. 다크투어는 다크투어리즘( Dark Tourism) 의 줄임말로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회적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 방식을 뜻하는 용어이다. 즉 전쟁, 학살, 재난, 테러, 질병 등 인류의 고통과 비극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가는 행위를 의미한다. 잔지바르도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과거의 아픔과 인간의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얻는 ‘기억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루사 가는 비행기 - 세렝케티로 가자

이제 쎄랭케티를 가기 위해 탄자니아 북부도시 아루사로 향한다. 오랜만에 타보는 터보드롭 비행기이다. 이제 아프리카의 심장 세랭케티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