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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코커서스의 심장 조지아 - 2 카즈베기

카즈베기로 향한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까지는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2차선의 넓지 않은 E117 밀리터리 하이웨이는 교통량이 매우 많은 도로이다. 트빌리시를 벗어나 얼마되지 않아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나타난다. 코커서스 산맥 남부 유역을 내려오는 아그라비 강을 막아 만든 진발리 호수이다.  진발라 호수에는 전설이 하나 전한다. 진발리 댐을 만들면서 12세기 타마르 왕조의 오랜 교회도 물속에 잠기고 만다. 언젠가 수심이 낮아지면 교회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교회를 찾아 종을 울리는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댐으로 막아 논 호수이니 수심이 낮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나누리 성채

트빌리시에서 70km 정도 달리면 호숫가의 멋진 성채를 만나게 된다.  군사적 요충지로 13세기 아그라비 공작이 조지아 영토였던 아그라비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아나누리성이다. 간혹 비극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수세기동안 이어져 온 전설이 있다. 타르타르 군대가 성을 함락시킬 목적으로 성을 에워싸고 포위하였다. 그리고 성안의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조만간 항복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런데 성안에는 강가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타르타르 군은 어느날 성밖에 떨어져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비밀통로를 찾기 시작한다. 결국 비밀통로를 드나들던 여자 한 명을 잡았는데, 누리(Nuri)에서 온 아나(Ana) 라는 여자였다. 비밀통로를 찿기 위해 모진 고문을 하였으나 아나는 입을 꾹 다물고 죽음을 맞이 하였다. 그래서 훗날 조지안인들은 그녀의 이름을 요새에 붙이고 그녀를 기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의 전설까지 더해진 아나누리 성과 진발리 호수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나누리 성채 입구로 가는 길

성안에는 두개의 교회가 있는데,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성에도 교회 두개를 만드는 것을 보니 독실한 조지아인들의 신앙심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나누리 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시인 푸쉬킨이 방문한 이후일 것이다. 2012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E117 도로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유적지이다. 

본격적으로 코카서스 산맥으로 진입하는 카즈베기 가는 길

코커서스 산맥으로 접어든다. 하얀 설봉들이 나타나면서 높이를 짐작하게 한다. 도로 사정은 점점 안 좋아지는 데 통행량은 전혀 줄지 않는다.

장엄한 설산과 정상의 성당

마을을 지날 때마다 산꼭대기에 성당이 보인다. 마을 인근에 편안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도 눈에 잘 띄는 산 꼭대기에 성당을 만들어 놓았다. 만들기도 어렵고 다니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왜 교회를 산꼭대기에 만들었을까?  아마도 외부의 침략으로 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성당을 볼 때마다 외경심과 함께 신의 존재를 한번 더 생각하기 위함은 아닐까?

구다우리 파노라마 전망대에서 차를 세운다. 깍아지른 듯한 잘벽 위에 세워진 전망대는 조지아 - 러시아 수교 200주년을 맞아 1983년에 건립되었다. 수교 200주년이란 1783년 맺어진 게오르그 조약을 기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게오르그 조약은 카르틀리 - 카헤티를 러시아 보호 하에 두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1801년 조지아 합병조약의 전초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조지아 입장에서 러시아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충돌과 그 속에서 흘린 피와 희생을 생각한다면 이 우호 증진비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코커서스 산맥은 눈 덮힌 설산과 천길 낭떠러지로 놀랍도록 장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즈바라 패스 가는 계곡의 아그라비 강

이 고개는 즈바라 패스라 불리운다. 십자가 고개라는 뜻인데, 이 고개 정상에는 '2395, 즈바리 패스, 1696' 이라고 새겨진 표지석과 기단 위에 올려좋은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세번에 걸쳐 십자가가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최초의 십자가는 키르 황제가 스키타이족을 매달기 위해 세웠으나 바로 철거되었다. 그후 11세기 다비드 4세가 같은 자리에 십자가를 세웠다. 세번째는 1824년 에르몰리프 장군이 세웠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 '이 십자가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에르몰리프 장군의 명령으로, 카나노프 소령의 지휘하에 산악민들에 의해 1824년에 세워졌다'   

스테판 츠민다 마을 입구

즈바라 패스를 넘어 스테판 츠민다 마을로 들어선다. 카즈베기라는 명칭은 카즈베기 산에서 유래하였으며 유명한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불을 전한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프로메테우스는 카즈베기산 꼭대기에 결박당해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 뒤로 펼쳐졌을 장엄한 카즈베기 산이 더욱더 상상력을 자극한다. 
 
카즈베기는 만년설이 뒤 덮인 봉우리를 바라보며 걷는 트레킹 코스로 전 세계 트레커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조지아는 코커서스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 카즈베기와 좀 더 북쪽에 있는 매스티아이다. 카즈베기에서 가장 잘 알려진 트레킹 코스로는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트레킹, 주타 트레킹, 트루 소 밸리 트레킹 등이 있다. 세 곳을 다 가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고민 끝에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트레킹, 주타 트레킹을 가 보기로 한다.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고원을 가로질러 언덕길을 올라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으로 향한다. 사방이 눈 덮인 산에 둘러싸인 게르게티 성당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해발 2000m 가 넘는 산 꼭대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교회가 서 있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래 쪽으로 스테판 츠민다 마을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힘들고 궃은 일이 있으면 머리를 들어 장엄한 코커서스 산맥과 사메바 성당을 바라보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게르게티 성당은 조지아 왕 브르쯔킨발(1318-1346) 에 의해 세워졌다. 성당은 성채가 감싸고 있으며 예배당과 종탑, 수도원 그리고 마을 연장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사브초 라는 공간이 있다. 게르게티 성당 건립과 관련된 한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카르틀리의 왕과 카헤티의 왕 그리고 이메레티의 왕들이 모여 게르게티 성당을 어디에 지을 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때 므츠헤타에서 온 한 노인이 제안을 한다. '소 한 마리를 죽인 다음 소의 뼈를 들판에 뿌리십시오. 필시 까마귀가 날아와 고기를 발라먹고 남은 뼈를 버릴 것입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우십시요' 그리하여 첫번째 뼈조각을 버린 아나누리에는 요새가, 두번째 뼈조각을 버린 즈바리 패스에는 십자가가, 그리고 그리고 세번째 뼈조각을 버린 이곳에 게르게티 성당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게르게티 성당은 조지아 정교의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조지아인들은 유사시에 국가의 성물과 보물들을 이곳으로 옮겨와 지켜냈다. 페르시아의 침략 시에도 성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를 이곳으로 옮겨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소비에트 정권은 조지아 정교의 미사를 금지시키고, 1988년에는 조지아인 최고의 성지인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조지아 정교에 대한 모욕으로 여긴 조지아인들은 철거를 요구했고 결국은 관철시켜 냈다. 이렇게 지켜진 조지아인들의 자존심은 게르게티 성당을 더욱더 숭고하고 빛나게 만들고 있다.  

주타트레킹

다음날 힘들다는 재필, 병준을 두고 혼자 주타 트레킹에 나선다. 중간에 길이 무너져 차가 못가는 도로를 걸어 주타마을로로 향한다. 주타마을을 지나자 트레킹 코스의 초입부터 장엄하고 아름다운 코커서스의 풍광이 트레커를 반긴다. 수 십 년 간 산에 다녔지만 우리나라 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들이다. 수목 한계선을 넘어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말을 타고 트레킹 코스를 오르는 투어도 있어 심심치 않게 말과 마주친다. 전에는 트레킹은 무조건 내 발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중국 따리 창산에서 말을 이용한 트레킹을 해 보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건강 상의 문제가 있으면 말을 이용한 트레킹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걸어가는 것보다 말을 타고 가면서 보는 풍광은 좀 색다르다. 높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케스트하우스 다섯번째 계절

  트레킹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엄청난 뷰를 품은 산장이 나타난다. 멀리 코커서스 산맥이 지그재그로 겹쳐지는 중간에 자리잡은 그림같은 산장으로 '다섯 번째 계절' 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다섯 번째 계절이라.... 지구상에 다섯 번째 계절이 여기에 존재하는 구나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이다. 늘 그렇듯이 서양인들은 해먹에 누워 편안하게 다섯 번째 계절을 즐기고 있다. 필자 같은 갈 길 바쁘고 마음 급한 트레커들은 시간에 쫓겨 지나치기 바쁘다. 그나마 하산 길에 들려 맥주 한잔하며 여유를 가져 본다. 한국인 트레커들도 가끔 보이는데, 이후 매스티아 트레킹을 함께 했던 지니를 만난 곳도 이곳이다.   

구름낀 차우키산

구름낀 차우키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주타 드레킹은 주타마을부터 차우키 호수까지 왕복 3시간 정도의 코스부터 더 길게 이어지는 다양한 일정이 가능하다. 다섯 번째 계절에서 하루를 묶는 트레킹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나, 산 아래에서 기다리는 재필이와 병준이가 눈에 선하다^^ 혼자하는 트레킹도 나름 매력이 있으나 트레킹은 일행이 있는 것이 좋다. 2000m가 안 되는 설악산, 지리산에서도 혼자 산행하다가 많은 사고가 일어난다.  외국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2,3000m 넘어가는 산들의 날씨는 엄청 변화무쌍하다. 여러가지 면에서 동행이나 일행이 있는 것이 좋다. 

차우키 호수

차우키 호수에 도착한다. 차우키산의 빙하 녹은 물이 고여 있는 자그마한 호수이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늘 그렇듯이 수영을 하며 빙하 호수의 한적함을 즐긴다. 도착하자 마자 시간에 쫓기며 내려갈 궁리부터 하는 필자와 비교해서 저런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이번 여행은 드론을 가져왔다. 아직 초보자라 그리 능숙하게 멋진 화면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하면 좀 나아지리라. 드론촬영에 호기심을 보이는 몇 몇 외국인들 이메일 주소를 주며 나중에라도 영상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여행이 끝난 지 6개월인데 아직도 보내주지 못하고 있다ㅠㅠ  몇 번의 드론 촬영으로 느낀 점은 촬영보다 편집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멀리 보이는 다섯번째 계절 산장

이제 하산이다. 픽업 차량 시간에 감안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이제 살짝 간을 봤으니^^ 매스티아로 향해 본격적인 코커서스 트레킹을 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