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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도 중부를 가다 - 2. 함피

아잔타를 떠나 함피로 행한다. 함피는 인도를 자주 다닌 여행자들에게 서인도의 자이살메르와 함께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장소로 언급되는 곳이다. 함피(Hampi)는 1970년대 남인도 여행을 하던 외국인들을 통해 처음 알려지면서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함피의 유명세가 더해지자 유네스코는 1986년 함피 유적지 일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2019년에는 뉴욕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 가 봐야 할 여행지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함피에 대해 알아보자 
함피는 비자야나가르 제국(1336 - 1565)의 수도이다. 1336년 형제간인 하리하라 훅카와 북카는 몰락한 호이살라 왕조를 대신하여 통가바드라 강을 낀 이곳을 수도로 하여 비자야나가르 왕국을 세운다. 바자야나가르 왕국은 지리상의 이점을 살려 향신료와 면제품의 교역을 장악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척할 수 있었다. 크리슈나 데바 라야(1509 - 1529) 시대에 그 전성기를 이루어 인도 대륙의 중남부를 가로지르는 크리슈나 강 이남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당시 이곳에 파견되었던 페르시아 대사는 바자야나가르 왕조가 북쪽의 이슬람 세력을 막기 위해 100만 명의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어, 당시 왕국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이곳을 방문한 포르투갈 출신의 도밍고 파에스(Domingo Paes)는 순례자들과 상류층을 위한 화려한 집들이 길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무역을 담당하는 화려한 저자 거리를 둔 국제 교역자로 서 함피를 묘사하고 있다. 도밍고의 기록에 의하면 함피는 26㎢의 면적에 7개의 문을 두고 튼튼하게 요새화된 성으로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헤마쿠다 힐에서 바라본 비루팍샤 사원과 멀리보이는 기묘한 모양의 바위산들

 그렇게 강력한 힘을 힘을 자랑하던 비자야나가르 왕국도 빠르게 종말을 맞고 만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당해 낼 수 없었던 데칸고원 일대의 다섯 술탄(아흐메드나가르, 버라르, 비다르, 비자 뿌르, 골콘다) 들은 마침내 연합부대를 결성하여 탈리코타에서 비자야나가르 왕조와 결전을 벌인다. 이 결전에서 패배한 비자야나가르 왕조는 술탄들의 약탈을 거친 후 함피에 상처투성이의 흔적만을 남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함피전경. 화강암 돌산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함피는 기괴한 형상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점점이 박혀 만들어 놓은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그리고 적갈색의 화강암 언덕 사이를 흐르는 통가바드라 강이 뒤틀려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놓았다. 그 풍광은 매우 강렬하여 이곳이 꿈같은 부귀영화를 누리던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무대였다는 감상적인 상념도 날려버린다.
 
함피에서 보이는 둥근 바위는 토르(Tor) 라고 불리는 화강암 풍화지형이다. 함피석(Hampi Rocks)이라고도 불리는데, 포천에서 나는 돌을 포천석이라 부르듯이 함피에서 나는 돌이라는 뜻이다. 설악산 울산바위와 같은 형태이며 절리를 따라 공모양으로 풍화되어 형성된 바위이다. 약 36억 년 전에 형성된 화강암인데, 편마암이 녹아서 생긴 마그마가 관입하여 굳은 화성암으로 데칸고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길이 500km, 너비 20km, 두께 5 - 25km로 분포한다. 인도에서 대부분의 사원과 조각들은 그 재질이 단단하지 않은 세립질 사암이나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 함피는 온통 화강암뿐이다. 결국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서 모든 것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비루팍샤 사원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한다. 7C 부터 이미 사원이 있었으며 10C 호이살라 왕조를 거쳐 1510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 시절에 증축하여 오늘날 같은 웅장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비루팍샤 사원은 현재도 영업(?) 하는 사원으로 함피일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중심 사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도 사용되는 사원은 탑신 꼭대기에 주황색 깃발을 달아 유적으로 남은 사원과 구별한다. 비루팍샤 사원에는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는 이벤트 한 가지가 있다. 사육하는 코끼리 코에 동전을 올려놓으면 코끼리가 관광객 머리를 쓰다듬으며 축복을 내려주는 것이다. 어디서도 받아 본 적도 없는 코끼리의 축복이니 마냥 재미있고 신이 난다. 그러나 축복과 함께 코끼리 콧물도 뒤집어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비루팍샤 사원의 고쁘람(관문). 높이 56m 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사원 외벽과 고쁘람(관문)에는 미투나를 장식해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미투나는 한쌍을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행동 및 행위, 그리고 남녀의 성적 결합을 표현한 인도의 조각이나 회화를 말한다. 인도 미투나는 사실감 넘치는 에로틱한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데, 불완전한 인간이 남녀결합을 통해 합일된 상태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행의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수행의 방편치고는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 아닐까^^ 물론 이런 조각들은 마하트마 간디가 '모두 없애버리고 싶다' 고 말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호불호가 갈린다. 

비루팍샤 사원 앞 함피 바라르

   비루팍샤 사원 입구를 나서면 함피 바자르가 시작된다. 함피 바자르는 폭이 10m 넘는 비자야나가르 왕조시절 최고의 번화가 였다. 현재도 함피 여행의 중심지로 바자르 북쪽에 숙소들이 밀집해 있고, 바자르 길가에는 식당과 기념품 점들이 늘어서서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함피는 전성기 향신료와 면직물 무역을 장악함으로써 거대한 부를 축척하였다. 이 도시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커다란 도시였다. 이 시대는 힌두왕조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해서 많은 매력과 놀라움을 보여준다. 지금도 당시의 화려했던 도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그 수준을 짐작케 한다.   

야자유를 마시고 있는 원숭이

사원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재미있는 광경이 보인다. 원숭이 두마리가 머릴 처박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다. 사원 중앙에 있는 시바의 링감에 부어주는 야자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우두머리 원숭이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혼자 야자유를 먹고 있고, 새끼 원숭이는 우두머리 원숭이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조그만 구멍을 이용하고 있다. 인도 모든 사원이 그렇듯이 원숭이들이 비루팍샤 사원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원숭이는 인간과 비슷한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의 영역 이외에 있는 다른 무리에 배타적이며 자신들의 영역을 지킨다.

대야로 장난치고 있는 원숭이

원숭이에 관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힘이 센 숫 것이 우두머리를 맡으며 배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우두머리는 매년 도전해 오는 젊은 숫 것들을 물리쳐야 하며 패배하면 집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오랫동안 우두머리 자리를 지킨 수놈 원숭이를 해부해 보니 위벽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위장병이 심했다고 한다. 우두머리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원숭이 무리는 최대 1,2백이며 그 이상의 큰 무리를 이루지는 못한다. 그것은 우두머리 혼자 감당할 수 있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같은 영장류인 인간이 그 한계를 넘어 더 훨씬 더 큰 무리를 이룬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 그 원인을 종교, 규칙, 신화, 거짓말 등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원숭이에게는 없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더 큰 무리를 만들 수 있었다. 즉 허구의 신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 신화를 따르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협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더 궁금하신 분은 유발 하리라의 '사피엔스'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빗딸라 사원

빗딸라 사원으로 향한다. 빗딸라 사원은 아름다운 구조물이 많기로 유명한 비자야나가르 왕조에서도 최고의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기둥 전체가 하나의 돌이며 섬세한 조각들이 있다

 제단으로 통하는 현관을 바치는 56개의 기둥들은 그 하나하나가 커다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기둥들이 두들기면 각기 다른 음색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둥들은 소리 나는 기둥(Musical Pillars)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두드려보면 기둥의 굵기에 따라서 다른 음을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교한 천장의 무늬들

가장 단단한 돌 중에 하나인 화강암으로 어떻게 이런 정교한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이전에 누가 물으면 유럽의 조각, 건축물들은 대리석이니까 가능한거야 우리의 건축물들은 화강암이라 질감이 다른 거야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화강암을 대리석보다도 더 정교하게 깎아 놓았다. 함피의 장인들은 화강암을 탄력 좋고 부드러운 나무 같은 재질도 바꾸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돌로 만든 신의 수레

빗딸라 사원에는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걸작이 있다. 그것은 돌로 만든 수레이다. 인도 사원에서 수레는 모셔졌던 신상들의 바깥 나드리 때 이용되는 것으로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이곳은 그 수레를 화강암으로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움직인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정교한 자태와 섬세함이 보는 이를 놀라게 만든다. 인도 50루피 지폐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바자야나가르 왕조의 왕궁

비자야나가르 왕궁유적으로 향한다. 넓은 공간에 대부부 건물은 기단부만 보이며 황량하다. 1565년 탈리코타에서 승리한 이슬람 다섯술탄은 이후 6개월에 걸쳐 함피를 처절하게 약탈한다.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고 종교적 상징물을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이었기에 약탈과 파괴는 더욱더 가혹했으리라. 함피의 왕궁은 그 가혹했던 역사를 증명하듯 건물터들만 즐비하다.  

하자르 라마 사원

 그 황량한 왕궁 유적에서 그나마 보전상태가 좋은 유적이 있다. 데바라야 1세(1406-1424) 때 지은 하자르 라마 사원이다. 비슈누의 아바타인 라마를 모신 사원으로 갤러리라 불러도 좋은 만큼 긴 외벽에 많은 부조들이 가득하다. 사원 내부에는 인도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를 묘사한 조각들이 있고 기둥에는 바하라, 부다, 나라심하 등 비슈누의 10대 아바타가 훌륭한 솜씨로 새겨져 있다.

사원 옥상에서 뛰어다니다가 관리인에게 한소리 들었다

 하자르 라마 사원 옥상으로 올라가니 멀리 화강암 바위산과 대비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 무리의 젊은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점프를 하고 있다. 바야흐로 SNS 의 시대. 인상적인 사진은 남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마다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태다. 아무래도 자극적인 것을 찾는 시대이다 보니 사진, 영상들도 점점 과감해진다. 아니 위험해진다. 심지어 사진을 찍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한다. Extreme Sports 중 비행슈트를 입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이른바 '윙슈트 점프'라는 스포츠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스포츠로 알려져 있는데, 3년 안에 사망할 확률이 50% 에 육박한다. 사고는 곧 사망으로 이어지기에 부상자가 거의 없는 것도 이 익스트림스포츠의 특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어 윙슈트 점프 인구는 줄지 않고 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젊은이들을 따라 신전 옥상에서 열심히 점프하다가 관리인에게 한 소리 듣는다. 누가 누구를 욕할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여왕의 목욕탕

궁궐 한켠에 여왕의 목욕탕이라 불리는 건축물이 보인다. 물론 여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황제의 별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지인들도 그 이름의 유래는 모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누군가가 붙여놓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여왕도 호기심이 생기는 데 하물며 목욕탕이라니^^ 오스만에 지역에 가면 하램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많고, 유럽의 많은 온천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왔다 간 곳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다 같은 이유일 것이다ㅋㅋ

로터스 마할

로터스 마할은 왕비들을 위한 정자와 황제들의 여름 궁전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힌두와 이슬람의 혼합된 양식으로 지어졌다. 1층은 이슬람풍의 아치로, 2층은 힌두사원에서 많이 보이는 시카라 장식을 하고 있다. 낯선 두 양식을 뒤 섞어 놓았는데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왕궁 바로 옆에다 건물을 지으며 왜 여름궁전이라고 했을까? 보통은 왕궁보다 지대가 높거나,  기온이 낮은 곳을 찾아 별장을 짓고 여름 궁전이라고 이름 붙인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여름궁전이나 중국의 이화원이 그렇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건물 건축에 그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즉 로터스 마할은 1층 천장 위로 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천장에 흐르는 물이 기온을 낮추고 물안개를 만들어 시원함을 더 했다는 것이다. 

코기리 사육장인 엘리펀트 스테이블

로터스 마할 뒷문으로 나가면 코끼리 사육장인 엘리펀트 스테이블이 보인다. 이 코끼리 사육장 때문에 로터스 마할의 실제 용도가 왕비의 정자 맞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즉 왕비의 정자가 어떻게 냄새나는 코끼리 사육장 옆에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로터스 마할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왕을 맞이하는 접견실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인도에서 코끼리는 오랫동안 전투 무기이자 재산의 척도였다. 서양 사신이 왔을 때 '너희 왕은 코끼리가 몇 마리 있느냐'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도에서 코끼리는 고대부터 무척 중요한 동물이었다.

날카로운 쇄기가 박혀있는 성의 정문

또한 코끼리는 오랫동안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였다. 잘 훈련된 코끼리를 앞세워 상대 진영을 혼비백산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왼만한 성문은 코끼리 몇 마리의 힘으로 부수고 돌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도의 성들은 대부분 정문을 좁게 굽이굽이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성문에 거대한 쇄기를 박아 코끼리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유럽에서도 코끼리를 강력한 무기로 사용한 사람이 있다. 로마와 일전을 벌인 카르타고의 한니발이다. 유럽인들이 거의 본 적이 없는 코끼리를 앞 세우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에 나타났을 때 로마인들이 가졌을 공포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대포가 발명된 이후 코끼리는 강력한 무기로서 지위를 잃어버린다. 대포 소리에 놀란 코끼리가 상대진영으로 돌진하기도 전에 난동을 피워 더 이상 돌격대(?)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헤마쿠다 힐에서 바라본 함피의 저녁노을

함피에는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유적만큼이나 유명한 볼거리가 있다. 바로 마팅가 힐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다. 마팅가 힐은 평지와 고도차가 60m 밖에 안 나는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도시의 전경과 붉은빛의 화강암 돌산이 어울려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많은 안내서에도 마팅가 힐을 최고의 일몰 명소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마팅가 힐은 제대로 된 길도 없고 가로등도 없다. 바위를 밟고 올라가기도 만만치 않고,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힘들고 신발이 부실(?)한 분들 비루팍샤 사원 바로 옆에 있는 헤마쿠다 언덕에서 일몰을 볼 것을 추천한다. 헤마쿠다 언덕은 광활하고 넓적한 바위 위에 사원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묘한 허허러움과 쓸쓸함이 매력적인 곳이다. 오후 늦게 헤마쿠다 언덕에 걸터앉아 비루팍샤 사원과 함피 바자르가 만드는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그 맞은편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다. 떨어지는 해의 붉은 햇살은 반쯤 부서진 사원 기둥들을 비추며 찬란했던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마지막을 보여줄  것이다.
 
함피의 많은 유적과 유물의 일부를 소개해 보았다. 몇 번을 더 와야 비자야나가르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까? 이제 인도의 기독교 땅, 고아도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