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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코커서스의 심장 조지아 - 1. 트빌리시

2024.7.29 부터 20일간 조지아를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조지아를 비롯해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까지 코커서스 3국을 도는 것이었다. 그런데 렌터카는 영토분쟁으로 전쟁을 벌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을 통과할 수 없다고 한다. 비행기나 철도를 이용하면 가능하지만 차로는 국경을 넘을 수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3개국을 돌자니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결국 고심 끝에 조지아만 가기로 한다.

수도 트빌리시가 중간에 있어 트빌리시를 통해 다른 곳을 가게 된다.

우리에게 조지아는 그루지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와인의 발상지 정도로 알려진 나라이다. 조지아에 대해 알아보자. 
조지아는 서아시아와 동유럽 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트빌리시이다. 동유럽과 서아시아 양 대륙에 영토가 걸쳐 있으며 인종, 역사종교, 문화적으로 유럽에 가깝기 때문에 동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는 영토가 대부분이다. 기후적으로는 북동쪽의 코커서스 산맥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 해안 저지대는 접경국인 러시아와 달리 아열대기후를 띤다. 인접한 코커서스 산맥 일대는 만년설이 쌓여 있는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인구는 374만명이며 면적은 69,700㎢으로 대한민국의 70% 정도이다. 조지아어를 쓰며 조지아 정교회 를 믿는 사람이 90% 정도, 한국보다 5시간이 느리고 한국인들은 360일 무지자 입국이 가능하다. 
 - 나무위키 편집 -    
 
조지아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다. 중앙아시아를 거치고, 투르키예를 거쳐 입국하기도 한다. 직항이 없다보니 항공권도 비싼 편이다. 이번 여행은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거쳐 입국했다. 조지아는 코커서스 산맥의 남 서쪽에 있다. 코커서스 산맥은 평균고도 4700m 이르고 그 유명한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서린 곳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한 죄로 제우스에게 카즈베기산(5047m)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이 형벌은 독수리를 죽인 헤라클레스 덕분에 끝이 난다. 보답으로 프로메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황금사과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헤라클레스의 도움이 필요했던 제우스는 결국 프로메테우스를 용서하게 된다. 코커서스는 그리스 신화 뿐 아니라 로마보다도 기독교를 먼저 공인한 정교회, 그리고 조로아스터교, 이스람교의 역사가 공존하는 땅이다.
 
코커서스 산맥은 필자에게도 인연이 있는 곳이다. 90년대 어느날 산악회 선배가 엘부르즈 원정기념이라고 쓰여진 셔츠를 입고 산에 나타났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산인데 셔츠도 눈이 부실만큼 멋이 있었다. 주면 안 되냐고 떼를 썻지만 선배에게도 소중한 것이니 줄리가 만무했다^^  당시 선배의 회사인 기업은행 산악회에서 엘부르즈 원정을 다녀온 것이다. 찾아보니 엘부르즈(5642m)는 코커서스 산맥에 있는 유럽의 최고봉으로 당시만 해도 원정 가기에 어려운 산이었다. 그때까지 유럽의 최고봉은 몽블랑인 줄 알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가보리라고 다짐했던 바로 그 산이 엘부르즈였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 엘부르즈를 오르지는 못하지만 코커서스에 들어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인다.     

트빌리시 정경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다. 조지아 여행은 트빌리시로 시작해 트빌리시로 끝난다. 수도라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트빌리시의 위치 때문에 여행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게 된다. 어느 곳을 갔다 가도 다른 곳을 가려면 트빌리시로 돌아와서 가는 것이 편리하다.

쿠가강을 내려다보는 바흐탕 고르가살리 기마상

트빌리시 여행은 쿠라강가에 서 있는 바흐탕 고르가살리(440 - 502) 의 기마상에서 시작된다. 고르가살리는 고대 이베리아 왕국의 왕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왕으로 트빌리시를 건설하고 페르시아에 맞서 조지아의 자립을 위해 싸운 왕이다. 고르가살리는 페르시아어로 '늑대머리' 란 뜻이다. 전투에서 늘 늑대머리 투구를 쓴 그를 보고 페르시아 병사들이 '늑대머리' 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아예 이름이 된 것이다. 고르가살리는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친 비잔틴 정책을 펼치며 페르시아에 저항한다. 그러나 끝내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6세기초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얻은 부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생전 그토록 조지아의 독립과 조지아 정교를 위해 노력했던 고르가살리는 지금 므츠헤타의 스베이티츠호밸리 성당에 묻혔 있다. 비록 생전에 조지아의 독립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독립을 쟁취한 지금의 조지아 모습을 본다면 하늘에서나마 뿌듯해 할지도 모르겠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 사메바가 삼위일체를 가리키니 '성삼위일체 성당' 이라는 뜻이다.

다음날 조지아 정교와 조지아인들의 자존심이라는 츠민다 사메바 성당으로 행한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은 성 삼위일체 성당이라는 뜻으로,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년과 조지아 독립 공화국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정부의 주도하에 국민들의 성금으로 1989년 설계공모, 1995년 착공을 하였고  2004년 완공되었다. 사메바 성당은 5000㎡ 면적에 87m 이르는 높이로 전 세계 정교 성당 중에서 세번째로 크다. 사메바 성당의 내부는 무척소박하고 간결하다. 의자가 없는 정교회 전통에 따라 예배석이 없고 2층까지 뚫린 구조 덕분에 무척이나 넓고 웅장해 보인다. 예배당은 활짝 열려 있고 관광객과 관람객들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다.

이콘화는 정교회의 성화를 말한다.

입구 왼쪽 벽에 걸려 있는 대형 이콘화 '조지아의 성인들' 은 애나멜 기법과 금도금으로 장식되어 화려함이 압도적이다. 이교도의 침략으로 부터 조지아를 지켜낸 영웅들과 수도사들 등 조지아의 모든 성인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이 화려한 이콘화 역시 조지아인들의 기부와 성금으로 제작되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반지와 시계, 목걸이를 내놓았다고 하니 이 성당 건립을 기원하는 조지안인들의 염원을 알 수 있다. 1997년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사메바 성당의 건립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려워져 있다. 엘리아 언덕은 원래 17세기부터 조성된 ' 호지만크' 라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공동묘지였다. 그러나 성당의 건립과정에서 무덤들은 무참히 파헤쳐졌고, 조지아 당국은 드러난 유골들을 그대로 흑더미 속으로 파묻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조지아 당국의 이런 야만적 행위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공분을 일으켰고 조지아 사회 내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가장 성스러워야 할 국가의 성전을 다른 민족의 피눈물과 유골 위에 지었다는 사실이 씁쓸함을 자아낸다.   

나리칼라 요새. 네이버블러그에서 인용

나리칼라요새로 향한다. 나리칼라 요새는 4세기 중반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세원졌다. 7세기 이슬람의 우미야드 왕조가 증축하였으나 파괴되었고, 다시 아랍인들이 새로 쌓았다. 이후에도 다시 세워지고 파괴되기를 반복하였다. 복구된 나리칼라는 1827년 발생한 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어고, 1935년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일부가 복구되었다. 현재도 복원 공사 중으로 방문한 날도 복원 공사로 입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나리칼라 요새에서 바라본 트빌리시 전경

 관광객들이 이 파괴된 나리칼라 요새를 찾는 건 사실 요새 유적 자체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트빌리시 전경 때문이다.  도시의 높은 곳에 위치하여 트빌리시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트빌리시는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도시 전경이 아름답다. 특히 올드시티를 내려다보는 야경은 아주 유명하다. 

조지아 어머니 상. 오른손에 검 왼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있다.

나리칼라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조지아 어머니 상이 나온다.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친구에게는 와인을 대접하지만 조지아를 침략하는 적은 검으로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조지아 어머니상은 사메바 성당처럼 기독교 공인 15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조지아 조각가 엘구자 아마슈켈리의 작품으로 높이가 20m에 달한다. 트빌리시 어디서나 바라보이며 은은한 조명을 발해 야간에는 더욱 더 잘 보인다. 그런데 너무 커서 그런지 정작 가까이서는 발등과 등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바노투바니 유황온천

나리칼라 요새 바로 아래, 관광의 중심지인 메이단 광장의 남쪽에 붉은색 지붕들이 봉긋하게 솟아있는 곳이 있다. 이슬람 영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아바노투바니 유황온천이다. 도시의 한 중간에 온천이 그것도 유황온천이 있다니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온천은 트빌리시 건설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사냥 나온 바흐탕 고르가살리가 뜨거운 물이 샘솟는 것을 보고 숲을 제거하고 세운 도시가 트빌리시라는 것이다. 트빌리시라는 이름 자체가 조지아어로 '따뜻하다' 는 의미이다. 우리로 치면 '온정리' 쯤 되겠다^^ 온천광장에는 고르가살리의 사냥개가 꿩을 매단채 뜨거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전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바노투바니 온천 내부 탕.

 러시아 대문호인 푸쉬킨, 톨스토이도 이 유황온천을 무척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1829년 여기를 다녀간 푸쉬킨은 '여기보다 좋은 온천은 보지 못했다' 면서 조지아 유황온천을 극찬하였다.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파리에 트빌리시 같은 온천장이 없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한창 번창했을 때는 60여개의 온천장이 운영되었으나, 지금은 열곳 정도의 온천장이 영업 중이다. 여행 중 온천을 만났는데 그낭 갈 수는 없다^^ 이슬람 건축양식의 파쉬탁이 인상적인 오르벨리아니 온천장을 들어간다. 바로 푸쉬킨이 찾았다는 온천장이다.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200년 전 찾아 왔을 푸쉬킨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푸쉬킨의 숨결을 전하다 보니 탕에서 다 벗고 있는 친구들도 등장한다. 친구들아 미안하다ㅎㅎ       

성조지상이 우뚝 솟아 있는 자유광장

자유광장을 행한다. 자유과장은 트빌리시 사람들에게 혁명과 저항을 상징하는 장소다. 19세기 조지아가 러시아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자유광장은 캐러반 사라이라 불렸다. 캐러반 사라이는 상인들이 머무는 숙소를 의미하는데 긴 여행 끝에 도착한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묵을 숙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혁명 전에는 예레반 파스케비치 장군의 이름을 따서 예레반 광장으로 불렸다. 소비에트 정권 시절 광장은 조지아 출신 소련 비밀경찰 국장 베리야의 이름을 따서 베리야 광장으로 불렸다. 다시 레닌 광장으로 개명한 후 마침내 자유광장이라는 멋진 이름을 얻는다. 
자유광장은 스탈린과 카모 등의 은행강도 사건이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심취했던 스탈린은 그의 동지들과 함께 혁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티플리스 러시아 제국은행의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한다. 당시 그들이 훔친 돈은 31만루블, 지금 돈으로 350만 달러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사건 후 스탈린은 아제르바이젠으로 피신해 체포를 면한다. 반면 공범자 카모는 또 다른 은행강도를 계획하다가 1911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1917년 풀려나지만 1922년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의 시신은 자유광장 인근 푸쉬킨 공원에 안장되었지만, 스탈린 시대 어디론가 옮겨진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사람들은 스탈린이 자신의 과거 강도 행적을 지우기 위해 카모의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1989년 자유광장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소비에트 정권에 대항하는 조지아 민족주의자 시위대를 소비에트 군대가 무력으로 해산하는 과장에서 2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2003년 11월 시민들은 손에 장미를 들고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세바르드나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 시위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다. 이른바 장미혁명이다. 조지아의 장미혁명은 일종의 도화선이 되어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랜지 혁명, 2004년 키르기즈스탄의 튜립혁명으로 이어졌다. 트빌리시 자유광장은 말 그대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조지아 민중의 열정과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숙소에서 마시는 와인 한잔

숙소로 들어와 한가하게 와인 한잔 한다.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에서 먹는 와인이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조지안 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우리나라 김치가 집집마다 만드는 법과 맛이 다르듯이 조지아 와인도 독창적인 제조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점토 항아리 숙성기술이다. 크베브리라는 전통도기를 사용하는데 으깬 포도를 넣고 땅에 묻어 1차 발효를 시킨다. 1차 발효는 공기 속의 자연 이스트만 사용한다. 그 다음으로 항아리 입구를 진흙으로 밀봉하여 공기를 차단한 후 그 자리에 조그마한 움막을 세우고 2차 발효 단계를 거친다. 크베브리 방식 와인 제조법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 재산에 등재되어 있는데, 푸시킨은 황토 항아리 숙성 비법으로 빛은 와인이 프랑스 와인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조지아 에서 결혼식을 하면 신부 아버지가 500L 이상의 와인을 준비한다고 전해진다. 기쁜날은 기뻐서 와인 26잔을 마시고, 슬픈날에는 슬퍼서 와인 18잔을 마신다는 조지아의 주도법은 조지아인들의 와인 사랑을 대변한다.     

러시아에서 징병을 피해 도망온 게오르기

와인을 마시며 한참 수다는 떠는 사이 갑자기 중년 남자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보니 한 남성이 전화를 하며 울고 있다. 중년 남장의 울음이 범상치는 않아 물어보니 러시아에서 징병을 피해 도망을 왔다는 것이다. 이름은 게오르기, 러시아에 남아 있는 아내가 보고 싶어서 아내랑 통화하다가 울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국 전쟁은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들은 전쟁을 왜 할까? 전쟁이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을 막는 방법을 얘기한 학자가 있다. 바로 전쟁이 시작되면 시간마다 권력 순위 대로 전쟁에 투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맨 처음 대통령을 전선에 투입한다. 한 시간 뒤에 국무총리, 또 한 시간 뒤에 국방부 장관 등. 전쟁은 전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권력자들이 본인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다. 본인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놈이 전쟁을 시작하겠는가? 지금 한남동 관저에 틀어 박혀 나라야 어찌되든 자기 대신 싸우라고 고래 고래 소리 치면 숨어 있는 어떤 놈이랑 비슷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