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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숭문산악부 동계지리산 등반(2008.2.25)

지난 2월 25일 학교 산악부 부원과 지도교사 2명은 지리산 동계등반을 다녀 왔습니다. 겨울철 등반은 매우 많은 준비와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야영을 전제로 했을 때는 더 그렇지요. 경험자 없이 동계등반에 나서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 입니다. 나름대로는 많은 겨울산의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번 등반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인원, 무거운 짐 그리고 혹한의 날씨 변수는 이 얼마나 안이한 사고였나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지요.그런 의미에서 보면 매우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등포역에 모였습니다. 이제 출발이지요. 학생12명에 지도교사 이정표, 소인철 2명. 학생들의 산행 경험을 생각하면 지도교사의 수가 좀 부족한 느낌입니다만, 무전기도 있겠다 그냥 출발입니다. 장기 산행 갈 때는 기차가 좋지요. 짐 싣기도 편하고 놀기도 좋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확인을 해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례에서 성삼제까지 가는 버스가 겨울철에는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택시를 타려고 하니 한대당 40,000원을 얘기합니다. 그럼 최소 16만원인데, 출발부터 이렇게 출혈이 커지면 안 되는데.... 역시 이럴 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제일입니다. 친구에게 부탁하니 연락이 옵니다. 25인스 렌터카로 6만원에 간다고.. 앗싸. 

 

 

 

성삼제 휴게소가 보이네요. 화엄사부터 걸어 올라오자면 하룻 길입니다. 아직까지 아이들도 생생^^합니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 사실 날씨만 좋으면 지리산 종주는 한 여름보다 한 겨울이 좋습니다. 사람도 적고 풍광을 보기에도 그렇고. 한 여름에 지리나 설악같은 고산은 안개가 끼어서 흐린 날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 그렇다는 것 입니다.

  

 

소선생과 저만 스틱을 갖고 있군요. 스틱은 짐이 많을 때 아주 유용합니다. 눈밭에서는 더더욱 그렇구요. 그것도 하나보다는 두개를 사용하는 것이 휠씬 좋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한을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보행속도도 2,30%는 빨라집니다. 제 경우는 한 10 여년 사용하다보니 짐이 많을 때 스틱이 없으면 아예 운행이 불가능한 지경입니다. 자주 산에 다니시는 분들께 시틱 사용을 적극 권장해 봅니다.

 

 

성삼재 인증샷이네요. 사실 겨울철 등반에서 무엇보다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신발입니다. 신발이 부실하고 문제가 생기면 운행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동계용 신발은 아주 고가라는 것이지요. 결국 대부분 대원들은 겨울철 신발은 장만하지 못하고 스패츠로 대신합니다. 스패츠는 예전 말로 하면 각반 같은 것입니다. 신발로 눈이 들어가는 것도 막아주고 신발도 감싸주어 겨울철 등반에서는 아주 유용합니다. 문제는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장비가 그렇듯이 정확한 사용벙을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 아이들에게 사용법을 정확히 강의해주지 못한 저희들의 불찰로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되지요.

  

 

천왕봉까지 25,9km 군요. 겨울철인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 짐이 많거나 운행속도가 많이 떨어지면 사흘은 잡아야합니다. 저희의 목표도 천왕봉까지입니다. 지리산 종주의 특이한 점은 중간까지는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러다가 중간을 넘으면 가속도가 붙습니다. 벽소령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그냥^^ 갑니다.  그리고 장터목부터는 뛰어다닙니다. 물론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에 짐 없이 움직이니 가벼운 것은 당연하겠지요

 

 

노고단 산장입니다. 취사장이 아니라 '밥짓고 나누어 먹는 곳'이군요. 이름 참 좋습니다. 좋은 우리 말과 지명이 일제시대부터 변질된 곳이 많습니다. 전국적으로 그렇고, 서울도 예외는 아닙니다. 서울에 탄천을 아시나요. 예전에 홍수가 낫다고 하면 탄천이고, 풍납동이었지요. 이름부터가 칙칙하지 않습니까. '탄천' 그런데 우리말로 바꾸면 '숯내' 입니다. 얼마나 정감있습니까. 탄천보다는 낫습니다만 학교가 있는 '마포'도 우리말로 '삼갯물' 입니다. '이화여대'를 '배꽃 계집 큰 배움집' 로 바꾸자는 예전의 어떤 분처럼, 모든 단어를 우리 말로 바꿀 수야 없겠지만 정감있는 우리말을 잘 살려 사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해 보입니다.

 

 

제가 등장하네요. 별로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데다, 맨 뒤에서 따라가는 사진 찍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 사진도 소선생이 나중에 전해줘서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행기나 글을 쓰기에는 인물이 나온 사진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풍광만 찍은 사진이 좋지요. 게을러서 여행기도 제대로 쓰지 않지만 사진찍을 때는 여행기에 사용할 사진을 염두에 둡니다. 그러다 보니 더 더욱 제 사진은 적어집니다. 이 사진이 아마 이번 지리산 등반에서의 유일한 독사진 같습니다.

 

 

산장에서 노고단 올라 가는 길입니다. 눈도 오고 길은 미끄럽고 짐은 무겁고, 이제 고난의 행군의 시작입니다. 사실 산에서 등반을 힘들게 만드는 제일의 적은 배낭의 무게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짐은 적고, 가볍게 꾸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훈련등반인데다가 야영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배낭이 무척 무겁습니다. 아이들 배낭 하나가 최소한 15kg이상 나갑니다. 소선생과 제 배낭은 20kg이 넘을 겁니다.  그리고 선배들의 배낭도 무겁지요. 앞선 산악부 대장 노현욱군과 뒤에선 대원의 배낭이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임걸령에서 하루밤. 첫날 운행은 여기까지입니다. 겨울철 운행은 대략 오후 4시까지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5시를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날도 일찍 어두워지는데다 해가 지면 무척 추워집니다. 추워지기 전에 자리잡고 텐트치고 야영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겨울야영은 산 생활의 모든 것은 가르쳐준니다. 장비준비, 짐싸기, 텐트치기, 텐트에서 생활하기 등.  

 

그럼 간단한 겨울 야영의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텐트는 바람을 피해 쳐야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눈을 여러 명이 눈을 다져서 높이를 낮추는 것이 좋습니다. 당연히 입구는 바람의 반대반향으로 내야하고 모든 음식은 한데 모아 입구쪽에 놓아둡니다. 음식을 꺼내좋지 않으면 재료를 찾을 때 마다 배낭을 뒤져야 합니다.  조리당번은 입구에 앉아서 조리를 합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텐트에서는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깁니다. 조리당번을 제외하고는 순서대로 뒤로 갑니다. 제일 선배는 당연히 텐트 맨 끝자리가 됩니다. 겨울야영은 모든 것을 텐트안에서 해결합니다. 음식도 텐트안에서 합니다. 텐트안에서 음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 그릇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물을 뜨겁습니다. 만약에 엎어지기라도 하면.... 한 10 여년전 산악인 허영호씨가 남극원정 중 텐트안에서 엎어진 국에 다리를 데어 원정을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아이들에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국을 엎으면 홀랑 베껴서 텐트 밖에 세워놓을거야' 

설걷이는 휴지로 합니다. 물이 없거나 적으니 당연하지요. 만약 식수가 없으면 눈을 녹여 먹어야 합니다. 이 경우 요리 때마다 눈을 퍼 오는 것보다 눈 주머니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실한 침낭을 가진 사람은 가운데서 자야합니다. 두꺼운 침낭을 가진 사람이 양끝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외에도 수 많은 노하우가 있습니다만 밑천^^ 관계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새벽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바람 소리에 잠을 설칩니다. 아침을 해 먹고, 출발하자니 난갑하네요. 아이들을 무엇을 할지 모르고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것 저것 알려주며 다독거리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제 배낭을 먼저 싸고  텐트밖에서 아이들을 독려합니다. 간신히 짐 꾸려서 출발. 그런데 짐이 어제보다도 더 무거워 졌습니다. 텐트에 눈이 묻고, 음식물정리가 되지 않아 그녕 구겨넣게 되니 부피도 늘어납니다. 고난의 연속이지요.

 

 

바람이 세게 붑니다.  바람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지리와 설악의 차이 점은 극명합니다. 설악산은 바위가 많은 칼날 능선이고 바람이 많습니다. 그러데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능선의 반대 방향으로 가면 천국입니다. 지리산은 바람이 적고 능선이 완만합니다. 문제는 지리산에 바람이 불면 바람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디를 가도 바람이 붑니다. 아이들이 쉬려고 앉으면 가자고 독려합니다. '바람부는 곳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구' 점심도 못먹습니다. 간단하게 행동식으로 떼웁니다. 산에서는 먹어야 가는데.... 몸은 힘들고 먹지도 못하고 체력은 점점 더 고갈됩니다.  

 

 

삼도봉 꼭대기. 바람이 ... 힘들게 올라 올라 왔지만 바로 내려가야 합니다. 무조건 가야합니다. 오늘의 목표는 연하천 산장. 이 눈보라 속에서 야영은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이 치쳐, 주저 앉아 일어날 줄 모릅니다. 독려합니다. 혼냅니다. 쥐어박습니다. 아이들의 다리는 안 움직이고 짐은 점점 더 무거워 집니다. 많은 아이들의 스패츠가 발목 위로 올라가서 신발로 눈이 그냥 들어갑니다. 고쳐줄 여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가야합니다.  

 

뒤쳐진 아이들이 치쳐서 운행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무렵, 무전이 날아듭니다. '여기는 연하천 산장, 지금 배낭 들어주러 반대로 출발' 소선생의 무전은 구원의 목소리입니다.   

 

 

2월의 지리산을 너무 만만하게 본 모양입니다. 벌써 다 어두워지는 6시반 경 마침내 연하천 도착, 아이들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손발이 다 얼어 있고 두명은 발갛게 색깔이 변했습니다. 상태를 점검하려는 데 산장 아저씨가 나타납니다. 아이들을 보시더니 저를 야단칩니다. 초보자가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구요. 아!!! 졸지에 초보자 되고, 혼나고,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산장 아저씨께서 물을 끊여 아이들 손발을  녹여주시니 무척 고맙습니다.  뜨거운 물에 담그고 나니 상태가 좋아집니다. 동상연고는 바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전에 설악산 동계등반 때, 한 대원이 귀가 나온 상태로 계속 운행을 해서 물집이 잡힌 적이 있습니다. 귀가 두배만큼 부풀어 올랐는데, 동상연고를 바르고 바로 치료한 적이 있지요. 전모대원이었는데 잘 사나 모르겠습니다.    

 

 

저녁을 먹고 짐 정리, 잠자리 정리를 합니다. 아이들이 불안해 합니다. 오늘 워낙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일이 두려운 것이지요. 아이들에게는 천왕봉으로 그냥 간다고 했지만 소선생과 이모저모 상의를 합니다.  '아무래도 무리다. 이 상태면 탈출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들에게 내일 일정을 알려주니 환호합니다. 녀석들 고생하러 와서는 뭐 그리 내려간다니까 좋은지...

  

 

밤새 눈 보라는 그치지 않습니다. 산장 앞 마당에도 수북하게 눈이 쌓입니다. 내일의 날씨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날씨 같으면 탈출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맑게 개어 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어 그런대 조금 지나자 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런.... 언른 도망가자. 내려오면서 불필요한 짐은 모두 산장에다 대포시겨 놓습니다. 물론 쓰레기는 아니구요. 준비해간 음식물이 얼마나 많은지 쌓아놓으니 한 짐입니다. 3월에 시작되는 입산 금지 기간때문에 음식물이 부족하다는 산장 주인 아쩌씨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쌀, 김치, 부식을 꺼내놓으니 아저씨게서 고마워 하십니다. 이것으로 어제의 신세는 조금 갚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탈출로는 벽소령입니다. 길이가 길기는 한데 완만한 도로라서 우리 같은 짐이 많은 팀에게는 제격입니다. 능선에서 너덜지대를 치고 벽소령하산길에 도착합니다. 너덜은 바위가 많아  바위나 돌로 길이 이루어진 지대를 말합니다. 흔히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길이 너덜 너덜 하다고 해서 너덜지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겨울에 너덜지대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바위가 미끄럽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제 내린 눈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바위에 눈이 쌓이니 그냥 미끄럼틀 나고 내려옵니다. 아이들은 일부러 주저앉아 내려오는데 저는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아이들이 눈을 쓸고 가버려 길이 미끄럼틀이 되어버립니다. 간신히 스틱으로 길을 개척하며 벽소령임도로까지 내려옵니다.  

 

 

이제 다 내려왔습니다. 지리산 아래 사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친구와 일행들이 트럭을 몰고 나타납니다. 다행입니다. 트럭이 있어서 총 14명에 짐까지. 일반 차량으로는 다 탈 수가 없습니다. 트럭뒤에 탄 아이들은 마냥 신난 표정입니다. 트럭 타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산에서 내려왔다는 안도감이 제일이겠지요. 벽소령아래 음정마을에서 백무동입구로 이동합니다.  

 

숙소입니다. 콘도식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숙소입니다. 원래 친구가 기거하는 회광사라는 절로 향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법회가 열린답니다. 느티나무 산장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합니다. 얼마 있다가 대전에사는 제 친구가 나타납니다. 손을 보니 등심을 한 10kg 정도 들고 있습니다. '야 영양보충이다'  아래 사진 오른 쪽으로 보이는 두 녀석들이 제 친굽니다. 나머지 분들은 회광사에 기거하시는 처사님들이시구요.  그림을 그리시는 분도 계시고, 우리나라에서 우렁이 처음하신 분도 계시십니다. 모두들 오랜만에 등심을 포식합니다. 물론 하산주도 곁들여서요.

 

 

산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관행이 있습니다. 산에 내려와서 하산주를 마시지 않으면 산행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선생과 저도 마찬가지구요. 친구가 인월양조장에서 받아온 약주로 하산주를 마십니다. 미신을 믿는다고 웃을지 모르지만 금기도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기 전에는 닭을 먹지 않는 것 입니다. 특히 날개를 먹으면 날은다는 속설이 있어서 암벽등반을 하기 전에는 절대로 닭을 먹지 않습니다. 참 우습지요. 이렇게 우리는 하산주를, 아이들은 등심을 맛나게 먹고 지리산 동계훈련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번등반에서 깨닳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아무리 3월이 코앞이라고 해도 겨울산은 혹독하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바람에 아이들은 준비 부실까지 겹쳐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었지요 

둘째로 등반과 장비의 관계는 영원한 숙제라는 것입니다. 장비가 적고 짐이 없으면 운행은 편합니다만 제한된 산행만 가능하지요.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야영 장비를 지고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무겁지요. 

셋재 아이들의 훈련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배낭을 지는 법도 몰라 운행 중에 배낭을 수도 없이 만져 주었습니다. 배낭을 싸는 방법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상과 같은 어려움에도 무사히 동계훈련을 끝낸 아이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숭문산악부!!  고생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