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9
이정표가 꾀가 나나보다. 터키 여행기 열심히 잘 쓰더니 이번 여행 마지막 일정인 샤프란볼루 편을 나에게 쓰라 한다.
아! 먼저 소개를 먼저 해야 하는데...
이름은 양재필, 닉네임은 악티, 음악 티쳐의 준말이니 나쁜 티쳐로 오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로 걷기가 좀 힘든데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보려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운전과 부식준비를 담당했다. 전기밥통, 코펠, 숟가락, 젓가락, 도마에 부식도 꽤 가져갔다. 여러 가지 양념에다 계란찜용 새우젓, 미역국용 멸치액젓까지 준비하니 가방 무게가 23kg를 넘어간다.
자동차 여행의 장점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식을 준비해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다.
터키음식은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 그런지 이국적이면서 풍성하고 맛도 있다. 그래도 가끔 된장찌게, 부대찌게 같은 것들을 먹을 수 있으면 여행이 매우 윤택해진다. 중년 남자 세명이 하는 여행이니 술이 빠지지 않았고 아침 해장으로 따끈한 국물을 먹으며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나의 준비물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간단히 이번 여행에 맡은 일을 소개해보자. 이정표는 우리의 지도자다. Leader가 아니고 Mapist, 즉 지도를 보는 사람이다. 병준이는 양재필, 이정표가 안 하는 모든 일을 다 한다. 특히 혼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흡연이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샤프란볼루로 향한다 거리는 450km, 대략 6시간 좀 넘게 걸릴 것 같다. 아침에 조금 서둘러 8시쯤 출발한다. 카파도키아에서 아쉬움은 벌룬을 타지 못한 것이다. 벌룬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카파도키아 있는 내내 바람이 많이 불었다. 떠나는 날도 벌룬을 매단 차들이 가끔 보였는데 결국 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을 기약해 본다. 카파도키아 괴뢰메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차를 좀 험하게 몰았나?” “렌트카회사에서 수리비 청구하는것 아냐?”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거 아냐?”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가의 정비소로 들어간다. 그런데 정비소에 일하는 사내가 정말 친절하다. 간단한 정비를 마치고 수리비용으로 100리라(약 20,000원)를 달라고 한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짜증과 걱정이 정비소의 친절함에 미소로 바뀐다.
얼마 지나자 외계행성 같은 카파도키아와 다른 아나톨리아 고원 특유의 광활한 대지가 보인다. 계속 되는 평야와 구릉들, 메마른 대지들이 보인다. 그곳에 작물들이 심어져 있는데 강도 보기 어려운데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하는 생각을 든다.
갑자기 길가의 경찰이 정지 신호를 보낸다. 과속이란다. 우리나라처럼 과속카메라가 있는 건지 구간 단속인지 모르겠지만 과속을 한 건 사실이라 선선히 인정하고 급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화장실을 못가 신호가 온 상태이고 단속되자마자 조금 더 급해졌다. 경찰애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Where is toilet?”을 외친다. 그리곤 차를 한쪽에 세우고 경찰서 안으로 튀어간다. 화장실 가는 뒤로 황당해 하는 경찰의 표정이 보인다. 그렇게 3명이 연속해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단속의 현장으로 복귀했더니 그냥 가란다. 조심하란다. 내가 많이 한심해 보였나..... 약간 애처로운 눈빛도 느껴졌다.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영어가 안 돼 대화하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샤프란볼루로 향한다. 요즘 구글 맵으로 네비게이션이 잘 되어 있어 여행이 참 편하다. 한 가지 단점은 최단거리를 알려주는 터라 길 상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알려주는 지름길이 비포장인 경우도 있다. 이번에도 농로 같은 길로 알려줘 포장도 비포장도 아닌 길을 한 50km정도 주행한다. 그래도 기분 좋다. 언제 한적한 터키의 시골길을 달려보겠는가.
배는 고픈데 시골 마을에 식당이 안 보인다. 한 시간 넘게 식당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참 달리다보니 오르타(Orta)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우리나라 읍 정도하는 크기인데 오늘 우리가 지나온 마을 중 가장 큰 곳이다. 그곳에 한 허름한 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터키 시골 식당에 동양인 3명이 나타나니 동네가 술렁이고 이넘 저넘 구경까지 온다. 식당 주인들도 반갑게 맞여준다. 메뉴판을 보고 추천을 받고 해서 이것저것 주문을 한다. 어 그런데 아주 익숙한 맛이 있다. 고깃국인데, 사골로 끓인 토란국과 비슷하다. 화려한 색깔의 샐러드, 돌돌말이 케밥도 맛나다. 그리고 감동을 준 착한 가격, 셋이서 먹고 6,000원쯤 낸 것 같다.
그리고 친절한 가계 사장인 청년들, 친근감을 보이고 음료도 건넨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이 만든 인공구조물을 보는 것은 별로 감흥이 없다. 자연을 보는 것이 훨신 낫다. 그럼에도 여행 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들에게 감동 받는다. 이번 여행에도 그 청년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점식식사를 하고 시골의 식당을 떠난다.
한참을 달리자 샤프란볼루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북쪽으로 갈수록 지형이 달라진다. 중, 남부는 평야지형인데 반해 북쪽은 산악지형이다. 그렇다고 강원도 같은 깊은 산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제법 골짜기가 있고 계곡에 물도 있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샤프란볼루(Safranbolu)에 도착했다. 샤프란볼루는 실크로드 상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 도시다. 지금은 실크로드의 흔적과 더불어 오스만제국시절의 전통가옥들이 많이 남아있어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이 전통 가옥들이 샤프란볼로의 상징으로 인터넷 이곳저곳에 소개되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숲, 강, 언덕, 전통가옥들이 조화를 이룬 예쁜 마을 이다.
또 약 200백 년 전쯤의 집들이 대부분 잘 보전 되어 있고 지금도 쓰이고 있었다. 사진 한 장 건지겠다고 높은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도착한다. 아라스타 바자르다.
언제나 여행지의 시장은 재미가 있다. 얼른 애물단지 차를 주차하고 시장으로 들어간다. 처음 마주친 골목과 건물들이 이국적이고 참 이쁘다. 인터넷에 소개된 곳도 많은데 인데 7~8년 전만 해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수리하려는지 비어있는 건물들도 많다.
하얀색 오스만 전통주택과 어울리는 터키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다. 하늘도 너무 예쁘다. 사진이 하늘만 나오면 예쁘다. 시장이나 그렇듯이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니 재미있는 것이 참 많다.
터키는 예전부터 비누가 유명하다. 비누에 올리브를 첨가해서 보습력이 좋다고 한다. 건조한 터키 여름은 정말 보습이 좋아야 할 것 같다. 샤프란볼루란 이름은 이곳이 최고의 향신료라고 하는 샤프란의 군락지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샤프란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이다. 사프란의 무게는 황금과 동등한 가격으로 매겨졌다고 한다. 1개의 구근에서 2~3송이의 꽃이 피며 꽃 1송이에는 3갈래로 갈라진 1개의 빨간 암술이 있는데, 이것을 따서 말린 것이 사프란이다. 1g의 사프란을 얻으려면 1천 개에 가까운 암술을 따서 말려야 한다. 샤프란의 원산지에 왔으니 샤프란을 사야하지 않을까.
사실 처음에는 샤프란이 뭔지도 몰랐다. 귀하단 예기는 들어봤는데 어떻게 쓰는지, 먹는 것인지 바르는 건지 베고 자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 그래도 귀한 거라니 사냥을 한다는 마음으로 찾아 나선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 물어보니 1g에 120리라 정도 한 것 같다. 시장은 물건이 모이는 곳이니 원하는 물건이 있고 흥정도 가능하리라. 또 일행이 몇 명이 되니 대량으로 구매해 많이 깍아 보리라 전의를 다진다.
한 가게에 들어간다. 그곳은 터키 사탕을 비롯해 디저트 같은 것들을 파는 가게인데 샤프란도 보인다. 1g, 2g, 5g, 10g 그렇게 포장 되어 있었는데 1g에 80리라 부른 것 같다. 2g짜리 1인당 10개씩 샀다. 그 가게 주인이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얼마에 샀는지 밝힐 수는 없다^^ 나, 이정표와 같이 여행해 본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흥정의 달인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예전 세르비아에서는 교통 범칙금도 흥정을 해 10분에 1로 줄였다. 그렇게 귀국선물을 품에 앉고 일단 숙소로 복귀하여 저녁 계획을 짠다.
터키 여행을 하는 중년의 세 남자! 터키어로 안녕하세요?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이런 일상적인 말은 알아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자꾸 까먹는다. 그런데 까먹지 않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맥주를 뜻하는 터키어 ’비라‘다. 이슬람문화권이라 술에 참 인색하다. 대형 마트에서도 술을 팔지 않는 곳이 많다. 맥주나 와인 알콜이 조금이라도 있는 음료는 따로 지정된 가게가 있는 듯 하다. 카페에서도 맥주를 팔지 않는다. 그래서 카페 들어가기 전에 ’비라‘? 하고 물어본다. ’비라?’하고 물어봤을때 OK하면 와인도 있고 독한 락끼도 있다. 샤프란볼루는 관광지이면서도 비라를 파는 가게가 많지 않은 듯 하다. 터키는 서쪽으로 갈수록 유럽에 가까워서인지 개방적이고 동쪽으로 갈수록 종교적 색채가 많으며 보수적이다. 수소문 해 봤더니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약 2km떨어진 곳이란다. 중년 사내 셋은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에 간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분위기 좋은 곳이다.
처음은 늘 먹던 맥주로 시작한다. 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이것저것. 맥주 몇 잔이 돌아가니 누군지 정확치 않지만 ‘락끼’라고 한다. 락끼는 터키의 독한 전통주이다.
외이터는 웃으면서 바로 락끼를 주천해준다. 나중에 우리가 와인을 사려했더니 길 건너까지 가서 와인도 골라주고 우리 택시까지 배웅해 준다. 역시 여행은 백미는 사람 만나는 거다. 샤프란 볼루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잠시 들린 여정이지만 새로운 장소와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제 이스탄불로 가야한다. 샤프란볼루의 밤은 깊어가고 이렇게 우리 여행은 점점 마무리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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